색, 샤라쿠
김재희 지음 / 북스코리아(북리그)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다소곳한 자세, 귀 뒤로 흘러내린 머리 위로 두툼한 가체를 얹은 여인네, 그녀는 영락없이 조선의 아리따운 기녀다. 열여섯 살이나 되었을까 남자를 겪어보기나 했을까. 왼손으로 옷고름을 풀고 있는 그녀는 남색 끝동을 단 삼회장저고리의 노란 바탕색, 옆구리의 붉은색 속고름에 흰 얼굴이 더욱 돋보였다. 저고리 위로 달린 노리개는 그녀의 오른손을 독차지 하며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그녀의 마음을 나타낸다. (394p)

 

혜원 신윤복의 최고의 걸작인 미인도이다. 일급화원으로 화조화를 잘 그렸던 아버지 신한평의 아들이었고 풍속화를 잘 그린다고 알려지기는 했지만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근대화 들어서였다. 특히 일본미술계에서는 정묘하고 농염하게 그려낸 풍속화가라고 극찬을 하고 있다.

 

다양한 장르의 그림을 잘 그렸던 직업화가. 그중에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화를 그린 풍속화에서 그의 재능은 두드러졌다. 무명화가로 남아있었던 그가 유명세를 타면서 알려지기는 했지만 그에 관한 많은 것은 알려져 있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역사를 바탕으로 한 그 이면의 이야기. 작가들은 그 부분을 놓치지 않고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 역사소설을 만들어낸다.

 

 

 

 

 

역사소설은 스테인드 글라스와도 같다. 아무것도 없는 창문위에 여러가지 색을 사용해서 아름다운 작품을 채워서 완성하는 스테인드 글라스. 역사라는 창문을 바탕으로 해서 작가만의 창의력을 발휘해서 다양한 색감으로 그 빈 공간들을 채워간다. 잘 짜여진 팩션의 아름다움은 뛰어난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에 햇살이 투영되어 아름답게 반짝이는 딱 그때의 절정의 미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바로 이 [색, 샤라쿠]다.

 

정조시대 단원 김홍도는 간자 즉 스파이를 양성한다. 그들을 일본에 보내서 우리가 임진년에 당한 것을 그대로 갚아주기를 원한다. 그에게 선택을 당한 것은 가권,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신윤복이다. 잘 생긴 외모에 그림실력까지 뛰어난 그였기에 간자로써 더이상 적합한 인물은 없다고 여겼다. 이제 에도로 보내지는 그에게는 어떤 일이 생기게 될까.

 

작가의 최근작인 [경성여성 구락부]는 절반을 기준으로 해서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전환되었었다. 아예 장르적인 변화까지도 꾀했던 작품으로 보였는데 이 작품 역시 가권이 조선을 떠나기 전과 후로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연극의 무대배경 전체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조선을 주배경으로 펼쳐지던 이야기는 가권이 일본으로 가면서 그당시 에도를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로 변한다. 다른 책에서도 익히 보아와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에도지만 작가의 책에서 보아지는 에도는 또 조금은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 문학작품에서만 볼수 있는 단어들을 사용해서 작품의 독창성을 높이면서도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을 선택해서 친숙함을 주고 있고 적절한 조연들을 선택해서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는가 하면 적재적소에서 갈등과 긴장감을 주어서 전체적으로 타이트하게 끌고 나가는 작가의 힘은 그야말로 놀랍다.

 

작가는 후기에서 지금보다 10여년전 자신은 더 성숙했을지도 모른다고 적어두었다. 맞다. 그만큼 이 작품은 무르익음이 돋보인다. 농염함이 뚝뚝 떨어진다. 잘 익어서 손만 대면 똑 떨어질 듯한 그런 완숙함 가득한 과일의 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있다. 실제로 정조가 일본과의 전쟁을 구상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가 바랐던 대로 계획한대로 우리가 임진년에 받았던 모욕을 갑자년에 되돌려주었다면 지금의 한일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나간 역사는 늘 아쉬움이 남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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