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어났다
조르주 페렉 지음, 윤석헌 옮김 / 레모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강렬한 독서를 경험했다. 최윤의 산문집 『수줍은 아웃사이더의 고백』(1994)을 읽다가 조르주 페렉의 단편 [빌랭 거리 La Rue Vilin]를 알게 되었다. 빌랭 거리라면 파리의 벨빌 지구(quartier Belleville)에 있는 그 빌랭 거리다. 생각난 김에 새로 번역 출간된 조르주 페렉의 책을 찾아 보았는데, 그의 글쓰기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사후 단편모음집인 『나는 태어났다』(레모)가 작년 말 발행된 것이 아닌가.

읽어가면서 몇몇 지점에서 한참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서문에서 자서전 문학의 프랑스 전문가인 필리프 르죈의 글이 보일 때 그랬고, [모리스 나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랬고, 프랑크 브나이유와의 대담인 [기억의 작업]에서 한 차례 더 그랬다. ['엘리스섬' 프로젝트 설명]에서도 시선과 생각은 붙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매혹이자 모종의 법열감으로 물든 시간이었다. 숨길 수 없는 지적 흥분과 머리의 미열은 낯선 사람에 관심 있는 누군가가 보았다면 금방이라도 시선에 잡혔을 광경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오랜만에 마주한 시간이었다.

르죈이 명시한 것처럼, "12년짜리 글쓰기 프로젝트였던 『장소들』은 계획이 반쯤 진행된 6년 후 포기했다"(서문)는 사실을 알 수 있고, "그에게 자서전은 말할 수 없는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며, 그와 동시에 우회적이고 복합적이며, 파편적이"(서문)라는 걸 알 수 있는 것이다.

[모리스 나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첫 번째는 바로 그 장소에서(카페 혹은 바로 그 거리에서) '눈에 보이는 것'을, 가능한 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해서 묘사합니다. 상점들, 건물의 세부 사항들, 아주 소소한 사건들(지나가는 소방차, 돼지고기 가공 상점에 들어가기 전에 개를 묶고 있는 부인, 이사, 광고물, 사람들, 기타 등등...)을 열거합니다. 두 번째는 장소에 상관없이(집, 카페, 사무실), 어디서든 기억 속 장소를 묘사합니다. 그 장소와 관련된 추억들을, 그곳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나, 다른 기억들을 떠올립니다."(68쪽)와 같이 『장소들』의 구체적인 글쓰기 방법론에서 멈춰서게 된다. "최종 결과물을 어떻게 할지 아주 명확한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그 작업을 통해 장소들의 나이 듦과 내 글쓰기의 나이 듦, 내 추억의 나이 듦을 동시에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되찾은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과 뒤섞이는 셈이죠. 시간은 이 계획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이 프로젝트의 구조와 제약을 이룹니다. 책은 이제 지나간 시간을 재현해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을 측정합니다. 말하자면, 모르는 체하거나 혹은 마음대로 재현하거나(미셸 뷔토르의 『시간의 사용』), 언제나 책의 옆에서 머물러 있기만 했던(프루스트의 작품에서조차), 이제껏 하찮게 여겨지고 죽은 시간이었던 글쓰기의 시간이 여기서는 핵심 축이 될 것입니다."(69쪽)라고 『장소들』의 글쓰기가 담고 있는 의미를 응시하게 됩니다.

[기억의 작업]에서는,

"페렉 기억이란 함께 나누는 무언가니까요. 자기 자신에게 중요하거나 은폐된 추억을 탐사하는 자서전과는 정말 다른 작업입니다. 공동의 기억, 집단의 기억에서 출발하니까요."(96쪽)

"페렉 그러니까 기억의 작업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고 하겠네요. 첫 번째는 일상성을 철저하고 면밀하게 검토하는 방식이고, 두 번째는 전통적인 방식을 따라 제 자신의 역사를 찾아보는 것이고, 마지막은 허구화된 기억입니다. 그러고 보니 네 번째도 있네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암호화'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어요, 완벽하게 암호화해서 집어넣는 거죠, 『인생사용법』 같은 소설에 추억이 될 만한 요소들을 묘사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건 사실 내부용이라 할 수 있어요. 그것을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은 저 말고 몇 명 정도밖에 안되니까요."(100쪽)

"브나이유 그렇다면 그러한 점에서 작가님을 사실주의 작가라고 할 수 있을까요?

페렉 네. 그렇게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자서전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던 순간부터, 저는 끝임없이 일탈하는 자전적인 단편들을 써왔어요. '나는 이러저러한 것을 생각했다'가 아니라 제 옷들이나 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답니다! 아니면 꿈에 대한 이야기든지요. 이런 방면에서 『베갯머리 서책』을 쓴 일본 작가 세이 쇼나곤이 제 스승님입니다. 정말 하찮은 것에 대한 생각을 모은 책이지요! 폭포수, 의복, 즐거움을 주는 사물들, 정제된 은총을 품고 있는 사물들, 가치 없는 사물들 같은 것들에 대한 생각을 모았어요. 제겐 이런 것이 진정한 사실주의입니다. 가치 판단을 완전히 배제한 현실 묘사에 의지하는 것 말이에요. 어쨌든 이건 제 생각이고요."(105-106쪽)

"브나이유 그러니까 작가님이 경험하는 하루하루는 작가님이 드러내는 허구에 무엇인가를 가져다 주는 거란 말씀이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사실주의를 재바련할 수 있고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개인주의에 맞서는 것이고요!

페렉 이 모든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기 때문이고, 그 결과가 물질적 대상, 즉 책의 일부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책은 다른 사람들의 소유가 될 터이고, 공유하게 되고, 교환하게 되겠지요. 오로지 집단적이고,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측면에서만, 이 모든 것이 이제 개인의 역사에 대한 접근이 됩니다."(108-109쪽)

"브나이유 그러니까 연대의 일부인 거죠!

페렉 그렇지요. 저는 일체주의 작가라 부르고 싶어요. 대단한 것을 주지 않지만, 그 명칭만은 제게 큰 기쁨을 주는 문학 운동이지요. 개인에서 출발해서 다른 이들에게 이동하는 움직임요. 저는 이것을 공감이라고 부릅니다. 일종의 투영이자, 동시에 호소하는 거죠!"(110쪽)

['엘리스섬' 프로젝트 설명]에서는,

"내게 엘리스섬은 바로 유배의 장소, 말하자면 장소가 부재하는 장소, 흩어지는 장소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장소는 나와 관련이 있고, 나를 매혹하고, 나를 끌어들이고, 내게 질문한다. 마치 몹시 피곤한 공무원들이랑 다량으로 미국인이라고 딱지를 붙이던, 달갑지 않은 자들을 모아둔 이 장소를 내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일을 거쳐야만 내 정체성의 탐색이 가능하듯, 마치 그곳 어딘가에 내 역사일 수 있었을지 모를 역사가 새겨져 있기라도 하듯, 마치 그곳이 있을 법한 자서전, 잠재적 기억에 포함되기라도 하듯. 그러나 그곳에는 뿌리나 흔적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형태는 없지만, 겨우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 내가 울타리, 혹은 분열이나 균열이라 명명할 수 있는 무언가이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 유대인이라는 사실과 아주 깊숙하고, 몹시 혼란스럽게 연결된 것이다."(115쪽)

"내가 엘리스섬에서 찾으려 했던 것은 바로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이라는 이미지, 극단적인 단절의 자각이다. 내가 검토하고, 문제 삼고,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은, 바로 존재하지 않는 공간, 부재, 그리고 흔적과 말, 타자를 추적하는 근간인 균열 속에 나 자신의 뿌리를 내리는 일이다."(119쪽)

특히 무엇이 나를 매혹케 했는가. 조르주 페렉이 자신의 기억, 일상에 대한 글쓰기를 정의하면서 그것을 '사실주의'라고 명명할 때이다. 흔히 울리포OuLiPo라는 실험문학집단의 일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엄연하게 자신의 문학을 사실주의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에르노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그것은 프랑스의 문학 전통 상 '일체주의Unamimisme'에서 그 계보의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아니 에르노의 조르주 페렉에 대한 언급이나 관심은 정확하게 계보학적 탐구의 하나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문고본 형태를 한 이 책은 분량이 글의 가치를 논하는데 있어서 결코 큰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한 셈이 되었다. 문고본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최근 출판계의 경쾌한 변화를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고, 그 결과나 영향을 예단하고 싶지도 않다. 프랑스의 독립출판사인 로브L'aube['새벽', 혹은 '여명']는 1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문고본 형태의 다양한 총서 출간을 통해 지식의 보급이라는 출판의 민주적 가치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물론, 이런 기획으로 가장 유명하고 일반적인 사례는 한길사에서 번역 출간했던 '크세주 Que sais-je ?' 시리즈. 모든 사람이 집에 서재가 있는 것은 아니며, 만인이 독서을 위한 여유 시간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모든 이에게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이 의미를 지닐 수는 없을 것이다. 다양한 직업과 상황에 따라 책의 형태, 장정, 길이 등이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접근가능한 매체, 휴대가 용이하고 손에 쥐기 편해진 매체가 되었을 때, 독서의 잠재성은 보이지 않게 확장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설령, 그것이 미미한 변화에 멈춰설지라도 말이다. 말하자면, 문고본은 '손에 쥔 민주주의'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태어났다』를 통해 한국의 독자들이 조르주 페렉의 독창적인 자서전 글쓰기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그리고 그의 글쓰기 방식에 대한 고민이 공감을 넘어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길 바란다." 옮긴이 윤석헌의 바람은 나라는 사람에겐, 적어도 일정한 공감의 형태로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이란 함께 나누는 무언가니까요. 자기 자신에게 중요하거나 은폐된 추억을 탐사하는 자서전과는 정말 다른 작업입니다. 공동의 기억, 집단의 기억에서 출발하니까요. - P96

폭포수, 의복, 즐거움을 주는 사물들, 정제된 은총을 품고 있는 사물들, 가치 없는 사물들 같은 것들에 대한 생각을 모았어요. 제겐 이런 것이 진정한 사실주의입니다. 가치 판단을 완전히 배제한 현실 묘사에 의지하는 것 말이에요. - P106

책은 다른 사람들의 소유가 될 터이고, 공유하게 되고, 교환하게 되겠지요. 오로지 집단적이고,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측면에서만, 이 모든 것이 이제 개인의 역사에 대한 접근이 됩니다. - P109

내가 엘리스섬에서 찾으려 했던 것은 바로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이라는 이미지, 극단적인 단절의 자각이다. 내가 검토하고, 문제 삼고,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은, 바로 존재하지 않는 공간, 부재, 그리고 흔적과 말, 타자를 추적하는 근간인 균열 속에 나 자신의 뿌리를 내리는 일이다. - P1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