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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김계영 외 옮김 / 레모 / 2021년 3월
평점 :
아니 에르노 특유의 문체를 간직한 훌륭한 번역을 통해, 우리는 1960~70년대 프랑스의 한 소녀가 어떻게 중산층의 한 가정에서 아내, 엄마로서의 역할을 체화해 나가게 되는지 알게 된다. 작가의 표현처럼, 가족 내 성 역할의 전통에 붙들린 '얼어붙은 여자'가 되고 만 것이다.
한 여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 과정에서 가족들(시댁 식구들, 남편)은 전통적인 성 역할 규범을 체화하고 이를 자신들의 일상적인 관계를 통해 재생산하는 행위자로 출현한다. 즉, 규범은 이데올로기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늘 관계를 통해서 상호 영향 하에서 하나의 상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규범'과 '상식'이 하나의 뿌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저항은 그것이 사소한 형태일지라도 쉽게 진행되지 못한다. 우리는 상식을 벗어난 자, 예의가 없는 자 앞에서는 최소한의 관용조차 허용되지 않는 사회의 실체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상식이고 무엇이 억압인지에 대한 각자의 판단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일상의 공간은 사실상 지극히 정치적인 공간인 것이다.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 연대기에서 '과도기'에 해당하는 이 소설은 그녀의 마지막 '소설'에 해당하면서도, "문학과 사회학, 그리고 역사 사이의 어딘가"에 해당하는 글쓰기의 단초를 보여준다. 제목이 Une femme gelée가 아닌 La femme gelée이며, 소설이 끝날 때까지도 '얼어붙은 여자'의 구체적인 이름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이러한 사실을 확증한다. 그녀는 구체적인 경험, 과정, 사물 등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듯하지만, 결혼 생활을 하는 거의 모든 여자가 겪을 수밖에 없는 경험의 보편성 속에 그러한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1960~70년대 프랑스 사회와 현재 한국 사회의 시공간적 차이는 결혼 생활에 내재한 가정 내 성 역할 규범과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가부장제 사회라고 하는 현실 앞에서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아니 에르노는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쓴 새로운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함께 살아가는 이 모험에서, 우리는 평등하게 출발하지 않고, 서로의 사랑 속에서도 사회가 전통적으로 남성에게 부여한 특권들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특권들을 문제 삼고 후대에 넘겨주지 않는 일이야말로 우리, 소녀들, 여성들의 임무다."
오랜만에 아니 에르노의 문체를 고스란히 간직한 번역서를 읽고 나니, 같은 출판사의 출간 예정작들도 살펴보게 되는데, 아니 에르노의 최근 작이라 할 수 있는 <소녀의 기억>이 리스트에 있다. 아마도 이 만족감을 번역될 책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벌써부터 나는 소리 죽여 나 자신에게 이상한 연재소설을 들려주면서, 실제의 나를 지워버리고 우아함과 연약함으로 가득 찬 다른 소녀로 대체한다. - P73
질서와 평화. 낙원. 10년 후, 나는 반짝거리는 조용한 부엌에서, 딸기와 밀가루가 있는, 그 이미지 속으로 들어갔고,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죽어간다. - P85
순응주의와 수동성에 있어서, 대학에서 양성평등은 완벽했다. 그러나 나는 여성을 위한 공부와 남성을 위한 공부가 따로 있음을 알게 된다. - P151
나는 혼자 사는 여자가 아니라, 아직 결혼하지 않은 불확실한 존재다. 사람들은 처녀와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른다. 반면에 결혼한 여자에게는 남편, 아이들, 아파트, 세탁기 등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 P163
나는 나를 걱정하는 듯한 이런 기만적인 방식을 증오한다. 시어머니의 끝없는 친절, 마치 모래 함정 같은 친절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달달하고 달콤하게, 유치하면서도 거짓되게, 비슷한 방식의 대답을 강요한다. - P188
어린 시절과 이전의 몇 년간의 리듬, 공부할 때의 충만하고 긴장된 순간들, 그리고 머리와 몸이 갑자기 둥둥 떠나니다 풀어지고, 휴식이 이어지는, 그런 리듬은 나에게서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사라지지 않았다. - P213
당신은 왜 그렇게 불평을 해, 미혼모들과 이혼한 여자들은 저녁에 자기희생을 선물할 남자조차 없잖아. 그러나 여러 번, 공원에서, 유모차를 밀면서, 나는 나의 아이아 아닌, ‘그의 아이‘를 산책시킨다는 이상한 느낌을, 남편이자 아빠인,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그를 안심시키는, 위생적이고 조화로운 시스템 속에서 움직이는 말 잘 듣는 하나의 부품이라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 P222
두렵고, 허둥지둥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여성의 인내심, 그들은 그것을 애정이라 부른다. 나는 둘째 아이를 잘 키우고, 세 개 학급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장을 보고 식사를 만들고 고장 난 지퍼를 바꾸 달고, 아이들의 신발을 사는 경지에 이르렀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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