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코르뷔지에 - 건축을 시로 만든 예술가 클래식 클라우드 23
신승철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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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의 형식을 품은 기행문이라는 참신한 기획을 필자 선택의 신중함이 얼마나 중요한가로 증명해내고 있는 <클래식 클라우드> 총서는, 건축전공자들을 통해 번역된 르코르뷔지에의 저서들이 아니라 그에 대한 입문서가 왜 건축을 포함한 이 땅의 예술가들에게 필요한가를 본서의 독서 체험을 통해 증명해내고 있다.


르코르뷔지에의 생애사와 필자의 기행경험이 구분되지 않는 온전한 하나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올 때, 그것은 먼 이국의 예술가, 그리하여 몇 가지 외형적 스타일로만 기억되기 일쑤였던 그의 이미지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일신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르코르뷔지에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심과 이해의 폭이 얼마나 심층적인 것인지를, 또한 이를 일정한 형식으로 풀어내기 위해 '작가'적 노력에 얼마나 진지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궁극적인 미덕은 건축가, 예술가이기에 앞서 인간 르코르뷔지에를 이해하기 위한 책의 비판적 태도에 있다고 하겠다. 예컨대, 그가 자신의 성공욕구와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한때 가족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했는지, 그의 아내가 가진 본연의 특성을 지켜주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비시 정권 지배 하의 프랑스에서 예술가로서의 꿈을 지속적으로 펼치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일 등을, 수많은 논쟁과 뒷말을 인식하면서도 손쉽게 옹호하거나 체념하지 않는 '이해'의 중심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그렇다고 이런 메타적 성격들만이 이 책의 가치를 말하게 하는 건 아니다. 한껏 적절하게 쓰여졌고 신중하게 다듬어졌을 문장들과 그 문장들을 말없이 뒷받침해주는 엄선된 이미지들은 그러한 구성 자체가 '글쓰기'라는 예술가적 실천을 통해 출현한 하나의 작품임을, 미적 세계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눈이 밝은 사람이라면 파리 6구 세브르가 35번지에서 3년 2개월 동안 르코르뷔지에와 함께 일했던 김중업의 건축언어가 역사를 매개로 어떻게 축적되고 전수될 수 있었는지 가늠해보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르코르뷔지에처럼 건축을 전공한 적은 없지만 유럽건축기행을 통해 그를 만날 수도 있을거라는 희망을 품기도 했던 (오사카의 가난한 동네의 권투 선수였던) 안도 타다오가 철근콘크리트 공법을 서구의 기독교 전통이 아닌 아시아의 선불교 전통으로 재전유가능하게 한 고리도 탐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프랑스와 브라질이 맺고 있는 오랜 지적, 문화예술적 교류에 있어서 오스카 니마이어의 건축 언어에 새겨진 르코르뷔지에의 영향과 두 사람 간의 차이 등을 가늠해보는 것도 이 책의 독서가 품고 있는 보이지 않는 외연에 해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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