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예찬믿음 1
찰스 M.쉘돈 외 지음 / 예찬사 / 198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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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기독교의 추락 속에 손에 잡은 책 한 권

 

기독교의 위상이 날로 추락하고 있다. 누굴 탓하기 이전에 그리스도인들이 경각심을 갖고 거듭남의 각오로 임하지 않으면 교계에 희망이 없다. 이럴 즈음에 내가 이 책을 손에 잡은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사회복음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던 중이었다. 미국의 월터 라우센부시(Walter Rauschenbush)를 피해갈 수 없어 그에 대한 글을 읽었다. 라우센부시가 영향 받은 사람 중 찰스 M. 쉘던(Charles M. Sheldon)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쉘던은 미국의 회중교회(Congregational Church) 목사이자 저술가로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조항래 역, 도서출판 예찬사, *이 책 제목이 눈에 거슬린다. 아무리 다중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책이라고 하지만 예수님을 인성적 측면만 생각하고 정한 제목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뒤로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로 표기하겠다. 실제로 10 종이 넘는 한국어 번역본 중 대부분이 이렇게 책 제목을 달았다)는 소설에 속하는 글이다. 원 제목은 In His Steps이고 부제(副題)가 'What Would Jesus Do?'이다. 그러니까 부제를 한글 역(譯)의 책명으로 삼은 것이다.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보다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가 더 설득력 있는 제목이라 생각했을 법하다.

책의 발단 부분에 나오지만 주인공 헨리 맥스웰(Henry Maxwell) 목사가 주일 예배 때 베드로전서 2장 21절을 본문으로 '주의 발자취를 따라서'란 제목으로 설교를 한다(*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 "It was to this that God called you, for christ himself suffered for you and left you an example, so that you would follow in his steps."). 이 본문이 쉘던의 소설 In His Steps에서 시종일관(始終一貫) 긴장 속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제이기도 하다. 사회의 가치 기준이 혼란스럽고 윤리 도덕이 추락할수록 사람들은 절대적인 잣대를 요구한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은 예수님처럼 살고 싶다는 설의법적 표현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성행했던 WWSD(What Would Jesus Do?) 물결은 이것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올바른 신앙인으로 바로 서기 위해

 

오늘날도 이 소설을 쓸 때와 비슷한 가치 혼란의 시대이다. 절대 진리가 발붙일 여지가 없고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 곧 진리라는 전도(顚倒)된 가치관이 횡행하고 있는 사회아다. 따라서 찰스 쉘던의 소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가 독자들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밖에 없는 시절이다. 그리스도인조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보다는 안락하고 부담 없는 세속적 신앙생활을 원하는 추세이고, 실제 많은 사람들이 그쪽을 행해 달려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 사랑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그리스도가 한낱 자기 필요에 의해 달았다가 떼어내는 장식물로 전락하고 말았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이 소설은 신앙생활을 소재로 하고 있다. 찰스 쉘던의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는 체코의 헨리크 시엔크비치(Henryk Adam Alexander Pius Sienkiewicz)가 쓴 Quo Vadis와 함께 오늘날까지 읽히고 있는 스테디셀러가 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책이라고 보아도 좋다. 또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강조하는 책으로는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The Cost of Discipleship('나를 따르라'는 제목으로 출판)과 함께 이 책은 수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쳐왔다. 어떤 비평가는 본회퍼의 책은 식자층에게 그리고 쉘던의 이 소설은 다중(多衆)의 일반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도전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In His Steps의 시대 배경은 19세기 중반이다.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의 여파가 미국에도 몰아닥쳐 부(富)가 한쪽으로 급격히 쏠리고 있었다. 빈곤층이 양산되어 끼니와 잠자리를 걱정해야만 했다. 공간적 배경은 레이몬드(Raymond )이다.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의 삼포(三浦)처럼, 김승옥의 '무진기행'의 공간적 무대 무진(霧津)처럼 가상의 도시이다. 그곳을 중심으로 예수님 닮기(Imitation) 운동이 사람들을 통해 전개된다.

 

상류층 신앙인들의 기득권 내려놓기

 

이 책은 전부 31개의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마다 다양한 캐릭터의 사람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중심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레이몬드 제일교회 담임 헨리 맥스웰 목사, 건전한 기독교 언론을 추구하는 레이몬드 데일리 뉴스(Raymond Daily News) 사장 에드워드 노만(Edward Norman), 기업의 부정을 고발하며 개혁하고 한 철도회사 간부 알렉산더 파워즈(Alexander Powers), 미성(美聲)의 성악가이며 자신의 재능으로 빈민 선교 집회 찬양 사역에 헌신하는 레이첼 윈슬로우(Rachel Winslow), 많은 재산의 상속녀이며 그 재산을 사회복지 사업에 쏟아 붓는 버지니아 페이지(Virginia Page), 링컨 대학 학장이며 이후 레이몬드 시의 금주운동을 주도하는 도날드 매쉬(Donald Mash).

 

면면을 살펴 볼 때 사회의 상류층 사람들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며 살아갈 수 있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도 거룩한 주일 날, 이들이 출석하는 경건해야 할 예배당에서…. 그 이름은 잭 매닝(Jack Manning), 이 사람은 인쇄공이었는데 공장 자동화의 물결이 밀려오는 과정에서 실직을 당한 노동자이다. 즉 자동식자기(自動植字機, linotype)의 도입으로 사람의 손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어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구직을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허사였다. 그 사이 아내는 숨을 거두었고(영양실조에 의해였을 것) 아이는 동료 인쇄공의 집에 위탁해 놓고 있었다.

 

그 실직자가 예배 시간에 강대상 쪽으로 나와서 던진 말은 지금까지 평온하게 신앙생활을 해 오던 제일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고 말았다. 마치 바리새인들을 나무라던 예수님 같았다고나 할까.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아까 여러분은 '주와 함께 가려네'라고 찬송을 부르셨는데 과연 그 뜻이 무엇일까요? 예수의 행적은,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스스로 고난을 당하고 자신을 부정하면서 길 잃은 자와 고통 받는 자를 구원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는데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는지요? 여러분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합니까? … 제 아내가 뉴욕 시의 한 셋방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어린 딸을 함께 데려가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빌다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 여러분,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21쪽).

 

산업혁명의 여파 속에 실직한 인쇄공의 죽음

 

믿는 자의 갈등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른다'(Following In His Steps)는 것은 무슨 뜻일까?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What Would Jesus Do?)는 앞의 말을 반복 강조한 것이다. 이런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 인쇄공 실직자의 장례를 치르고 맥스웰 목사는 획기적인 선언을 한다. 1년간 온전히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삶을 살아가기로. 교인들의 호응도 커 약 50 여 명이 이 운동에 동참해서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사회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일에 헌신하기로 서약한다. 위에 예거한 사람들이 그 운동의 주축들이다.

 

데일리 뉴스 사장 에드워드 노만은 주일에도 발행하던 신문을 쉬기로 하고 술과 담배 광고를 금지하며 흥미 본위의 기사를 게재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철도회사 간부인 알렉산더 파워즈는 자기 회사가 연방정부의 주간통상법(州間通商法)을 조직적으로 어기는 것을 고발함으로써 해직된다. 뛰어난 음성으로 고액의 연봉 제의를 뿌리친 레이첼 윈슬로우는 렉탱글 빈민 마을에 들어가 찬양으로 봉사한다. 고액 재산의 상속녀인 버지니아 페이지는 자신의 재산을 기독교 사회복지 사업에 쾌척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정신으로 신문을 발행해 적자 경영에 빠진 데일리 뉴스에 거금을 지원한다. 지금까지 대학 교수로 자족하던 도날드 매쉬 학장도 상아탑을 벗어나 지역의 금주 운동에 뛰어 들어 지도력을 발휘한다. 이 사람들이 내걸고 실천한 슬로건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였다.

 

소설은 픽션(fiction)의 영역에 속한다. 즉 허구(虛構)이다. 그러나 있을 법한 허구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찰스 M. 쉘던의 In His Step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성경 다음 많이 팔린 책으로 기록(30개 언어로 3천만 부 이상이 판매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면서도 신학자들과 문학평론가들이 도외시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진리는 허구와 공존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작가 찰스 쉘던은 복음을 보다 쉽게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소설의 방식을 택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재평가의 과정을 밟을 필요가 있다. 현실 안주형 그리스도인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교계 상황을 직시할 때 이런 형식의 글로 사람들을 예수 앞에 바로 세울 수 있다면 비판이 아니라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 될 것이다.

 

재조명되어야 할 찰스 M. 쉘던의 소설들

 

쉘던의 In His Steps는 17세기 존 번연(John Bunyan)이 쓴 <천로역정(Pilgrim Progress)>과도 비교된다. 존 번연도 침례교 목사이자 작가였다. <천로역정>은 우화소설로 역대 신앙서적 중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졌다는 점도 그렇다. 찰스 쉘던은 미국 회중교회 목사였고, 교회의 대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이 소설 외에도 이것의 속편에 해당하는 Jesus is Here 등 여러 권의 소설을 출판했다. 모두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적 삶을 강조한 것들이다. 쉘던은 In His Steps를 쓰기 전 직접 실직한 인쇄공으로 가장하여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을 만났다고 한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말과 행동과 믿음의 불일치를 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자. 신자유주의의 풍랑 속에 세상적 윤리와 질서가 교회에 그대로 이식되어 예수님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맘몬주의(Mammonism), 승자독식주의, 인본주의 등이 주님의 자리를 대신하려 하고 있다. 기독교인의 윤리 의식조차도 희미해져 무딜 대로 무디어진 상태다. 이럴 때, 그리스도인 모두가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과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고 묻는다면 우리의 신앙이 다시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목회자이자 저술가인 에이든 윌슨 토저(Aiden Wilson Tozer)는 현대의 그리스도인을 회색 지대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예수님처럼 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 사람처럼 사는 것도 아닌 회색지대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경고의 말이다.

 

찰스 M. 쉘던은 이 소설의 대미를 이 땅에 이루어질 이상적 사회 건설과 함께 재림하시는 예수님의 환상을 바라보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동안 등장했던 인물들을 총 출동시켜 맥스웰 목사가 바라고 등장인물들이 생각하고 독자들이 원하는 결말을 이끌어낸다. 해피 엔딩이다. 교회의 문간마다 성도들의 가슴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란 표어가 붙어 있는 것 같다. 이 땅에 천년왕국의 도래를 꿈꾸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한 마디 덧붙일 것, '고통을 다른 이에게 대신 받게 하려는 기독교는 참된 기독교가 아닙니다. 진짜 기독교인이라면 사업가든 시민이든 간에 반드시 예수님에게로 가는 희생의 행로를 따라 그 분의 발자취를 밟아가야 할 것입니다. 맥스웰 목사가 마지막 설교에서 강조한 말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으리라.

 

자본주의의 폐악 속에서 벗어나야 할 그리스도인

 

얼마간의 헌금과 몇 시간의 봉사 활동으로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다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으로 주님께서 걸어가신 고난의 길을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기득권을 내 놓고 가진 것을 솔선해서 나누어야 한다. 초대교회처럼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는"(행 2:44-46)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이러한 초대 교회 정신이 우리 기독교가 다시 살아나는 길이다. 쉘던이 이 소설에서 강조한 것도 바로 이것이다. 상류층 사람들이 자기 것을 빈민들에게 나눠주고 함께 하라는 것이다. 목회자도 예외일 수 없다. 이 소설의 에드워드 감독(Bishop Edward)과 나사렛 에비뉴 교회의 칼빈 브루스(Calvin Bruce) 목사처럼 자신들이 온갖 정성을 다해 사역한 교회를 내려놓고 주님이 걸어가신 고통의 길을 기꺼이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쉬운 일일까. 우리와 같은 연고주의가 뿌리 깊은 교계의 상황에서.

 

교계가 위기를 향해 치닫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결국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달려 있다. 세속적 삶에 신앙을 편승시켜 나만을 위한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이 소설에서 시종 주창하고 있듯이 거룩한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갈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우리가 선택할 일만 남았다. 교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서구 기독교의 과거를 그대로 닮아가는 모습이다. 지금 유럽의 기독교는 어떤 상태인가. 외형만 덩그러니 남고 텅텅 빈 예배당,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지금 이 시간부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란 물음 앞에 모두가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래서 WWJD 운동이 이 땅에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게 하는데 쉘던의 이 소설이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일독을 권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In His Steps의 마지막 '단어'로 글을 맺는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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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천국, 쿠바를 가다 - 세계적 의료모범국 쿠바 현지 리포트
요시다 타로 지음, 위정훈 옮김 / 파피에(딱정벌레)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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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더위에 의미 있는 피서를 했다. 마른장마 속 폭서(暴暑)에 쿠바 여행을 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 했던가. 아열대에 위치해 있는 쿠바, 그 나라를 나에게 소개해 준 사람은 알레이다 게바라 마치(Aleida Guevarb March) 박사였다. 그녀는 쿠바 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Che Guevara)의 딸이기도 하다.

 

지난 7월 15일이었다. 서울대 의대 행정관 3층 대강당에서 강연 하나가 열렸다.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에서 주최한 강연이었는데, 강사는 위에서 밝힌 알레이다 게바라였고 주제는 '쿠바의 1차 의료'였다. 의료는 생명과 관련된 것으로 국민 모두가 알고 싶어 하는 분야이다. 지금 우리는 의료 민영화로 심한 갈등을 겪고 있지 않는가.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 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지구상의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다. 국가 GDP로 따진다면 개발 도상 국가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나라의 의료와 교육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뒤지지 않아 여러 나라의 연구 주제가 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나라 보건 의료 관계자들과 정치하는 사람들이 먼저 읽어 보면 좋겠다.

 

알레이다 게바라는 쿠바의 의료체계에 대해 2시간 강의를 하고 30분 정도 청중의 질문을 받고 답했다. 스페인어 강의에 영어 통역이어서 전체 내용를 온전히 수용할 수는 없었지만 쿠바의 1차 의료에 대해 적지 않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국가의 의료 보험 체계와 나 개인의 건강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책 한 권을 구입했다. 여름 피서를 이 책 읽기로 대신할 생각이었다. 쿠바의 1차 의료에 대한 강의 내용을 보완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의료 민영화 문제가 국민 각자에게 끼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욕심도 작동했다. 그 책 제목이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이다. 사회주의의 길을 걷고 있는 가난한 나라 쿠바에 '천국'이란 수식어를 붙일 정도의 의료체계라니!

 

이 책을 사서 읽을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한 사람이 알레이다 게바라이니 그녀가 쿠바 여행을 소개한 사람이 되는 셈이고, 책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의료천국 쿠바를 재미있게 읽었으니 내겐 쿠바 여행을 다녀 온 것과 같은 의미가 있다.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책을 읽음으로써 독서삼매(讀書三昧)에 빠지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좋은 피서가 되겠다.

 

이 지구에는 크고 작은 다양한 국가들이 존재한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을 건강하게 지켜 주어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하는 데 있다. 소수 특권층을 위한 국가가 아니라 국민 다수를 위한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이런 점에서 쿠바의 의료 정책에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철저하게 국민 다수를 위해 확립 운영되고 있는 의료 정책, 그들에겐 '돈'이 아니라 '생명'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시스템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일본인 관리이다. 요시다 타로는 유기농에 관심이 많은 관계로 쿠바를 방문했고, 유기농 관련 문제뿐 아니라 의료와 교육까지 관심 영역을 확대해서 관찰 탐구한 것을 리포트 형식의 책으로 출판했다. 그는 이미 쿠바를 여행하고 의미 있는 여러 권의 책을 공간한 바 있다. <200만 도시가 유기채소로 자급 가능한 이유>, <세계가 쿠바의 고학력에 주목하는 이유>,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등 주로 리포트성 글들이다.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도서출판 파피에, 2011년)는 '들어가며','마치며'를 포함해서 총 5부의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은 이 땅의 사람이 아니지만 내가 좋아했던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인간적 의료가 아름답다'는 제목의 추천서도 따사로왔다.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직접 읽어 볼 것을 권하지만, 우선 각 부의 제목에서 책에 담길 내용을 가늠할 수 있도록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부 '단연 돋보이는 쿠바의 지역예방의료' 2부 '외화획득의 수단-전문의료와 의약품' 3부 '대체연료와 전자정보 네트워크' 4부 '국경 없는 의사단' 5부 '지속 가능한 의료와 복지사회 구조 만들기'로 되어 있다.

 

쿠바의 의료체계는 국가의료시스템이다. 국가에서 모든 의료 행위를 책임지는 체계이다. 암 수술에서부터 심장 이식까지 모든 의료비는 무료이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이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하겠지만 자본주의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살펴볼 가치가 있는 의료 시스템이 아닌가 한다. 쿠바는 1차, 2차, 3차로 의료 체계가 나뉘어 있다. 이런 의료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가정의(家庭醫, family doctor)이다. 쿠바 전체 의사 6만7천 명의 47%를 차지하는 가정의는 1차 의료 조직을 책임지고 있으며 환자의 98%를 커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쿠바 예방중심 의료체계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등이 쿠바 혁명(1959년)을 성공하기 전의 의료체계는 순전히 미국식이었다. 철저히 가진 자를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스트로는 병원 갈 돈이 없어 죽어가는 농촌의 현실을 보고 소외 받아온 농촌 지역에서부터 의료체계를 정비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농촌 지역에 의료 시설과 서비스를 집중 지원하고, 이런 곳에 양질의 의사를 우선적으로 파견했다.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따라서 과거 소련과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었다. 1989년 소련과 동구 사회주위 국가들이 무너지면서 쿠바는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미국이 '쿠바 민주화법', '헬름스버튼 통상금지법' 등을 통해 대 쿠바 봉쇄정책을 강화함에 따라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쿠바 정부는 이 기간을 '특별시기(special period)'로 명명하고 전체 국민이 연대하여 어려움을 공동 대처했다.

 

미국과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 상황 아래 놓여 있었지만 국방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교육과 의료 등 복지 예산은 늘렸다. 여기에 더해 의학 과학 기술에 대해 투자를 확대했으며 지진과 해일 등 재난 발생 국가에 대해 의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쿠바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가난한 나라를 돕는 데 솔선수범했다. 모두 꺼리는 체르노빌 원폭 피해자들을 적극 도왔고, 2005년 파키스탄에 지진이 났을 때, 그 이듬해 인도네시아 자바 섬 지진에 맨 먼저 달려가서 가장 나중에 의료진을 철수한 것도 쿠바였다.

 

그것뿐만 아니다. 헨리 리브 국제구조대를 조직해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등 이웃 나라에 직간접적으로 의료 지원을 아까지 않았고, 학생 규모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의과대학인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ELAM)을 세워서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해,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서 온 1만~1만2천 명의 학생들을 무료로 교육시키고 있다. 의학 공부를 하고 싶지만 형편이 닿지 않는 우리나라 학생들도 ELAM에 입학할 수 있는 길을 알아보면 어떨까.

 

미국의 경제 봉쇄는 쿠바를 자급자족 경제로 진입하게 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나 할까. 의료 산업도 외국 의존에서 탈피해 대체 의료를 모색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접종되는 13종의 예방 백신 가운데 12종을 국산으로 대체했고, 항 콜레스테롤제, 수막염 백신, B염 간염백신도 세계로부터 인정받은 쿠바의 바이오테크인데, 이런 자체 백신들을 개발도상국에 무상으로 지원까지 해 주고 있다.

 

쿠바는 풍부한 지하자원을 갖고 있지도 못하고 국민 소득도 높지 않은 가난한 나라지만 의료에 관해서만은 부자인 나라이다. 아프면 누구나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치료 전에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을 의료를 실시하고 있다. 따라서 유아 사망률(1천명당 5.2명)이 세계에서 가장 낮으며 평균 수명도 78세로 선진국 수준이다.

 

지금 우리는 의료 민영화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의료 민영화는 미국식 의료 시스템을 따라가는 것이다. 흔히들, 미국식 의료체계는 죽을 사람도 살려내는 첨단 의술을 가능하게 하지만, 살릴 수 있는 가난한 사람은 죽이는 의료 체계라고들 말한다. 돈이 생명을 좌우한다는 얘기이다.

 

미국식 의료 민영화가 되면 돈이 없어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맹장 수술을 할 때, 국민 의료보험을 실시하고 있는 일본은 6만 엔(약 80만 원), 우리나라는 평균 72~216만 원인데 비해 민영 의료 서비스가 발달한 미국은 244만 엔(약 3천2백만 원)의 병원비가 있어야 한다.

 

영국과 뉴질랜드의 복지 의료 제도가 무너져 내렸다. 공립병원 의료 서비스가 약화되고 이익이 나지 않는 지방 공립병원은 거의 폐쇄되고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은 대도시 몇 개뿐이다. 그 대신 등장한 것이 민간 주식회사 병원이다. 이들 민간병원은 이익 창출을 제일의 목표로 한다. 과잉 진료와 과다한 의료비 청구는 불은 보듯 뻔하다. 의사의 능력도 수익을 얼마나 올리느냐에 따라 판가름 난다.

 

쿠바의 의료 제도는 돈이 아닌 사람 중심이다.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조류(潮流) 속에서 쿠바가 이런 생명 중심의 의료 시스템을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특유의 '호혜와 평등, 참여와 연대'라는 사회 가치에 기인한다. 의사도 생물학적이고 기계적이 아니라 주민 생활에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연대의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쿠바의 의사는 지역 공동체에서 신뢰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지점에서 쿠바의 국가의료시스템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쿠바의 의료 시스템은 3가지 주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첫째, 사람의 생명은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없고 둘째, 모든 국민은 경제적 여건에 관계없이 무상 치료를 받을 권리를 가지며 셋째, 의료 지원은 지역에 상관없이 어디에 살든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국민 개개인의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는 의료체계이다.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는 의사 혁명가였다. 혁명 성공 후 쿠바의 의료 체계를 확립하는 데 그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 체 게바라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단 한 사람의 생명은 지구상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의 전 재산보다도 100만 배나 더 가치가 있다. 이웃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자부심은 높은 소득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축재할 수 있는 모든 황금보다도 훨씬 결정적으로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민중이 갖는 감사의 마음이다"​

 

우리와 비록 다른 환경과 조건이지만 그들 삶의 질 제고를 위해 노력하는 것에서 많은 교훈을 얻게 된다. 사회주의 국가 쿠바의 의료정책은 자본주의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와는 다르다. 돈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천박한 자본주의 논리에 그것 외에도 사람을 위하는 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 책은 증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사람은 왜 가난한 나라 쿠바를 의료 천국이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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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도 현장 경험이 필요하다. 신문사 및 잡지사 기자나 또는 방송 작가 등이 현장 경험을 토대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대통령의 글쓰기>의 지은이와 같이 대통령의 연설 비서관을 지낸 것은 특별한 경험의 영역에 속할 것이다. 그 경험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고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드는 마력을 갖고 있는 책이 <대통령의 글쓰기>이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도 그 바쁜 와중에 이렇게 글을 쓰기 위해 이렇게 노력했는데, 그리고 이렇게 잘 썼는데... . 도전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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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목회 현장 이야기 - 생명의 영성이 약동하는 선교신학연구 10
한경호 지음 / 미션아카데미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옛날 같지는 않지만 아직도 월간지 또는 계간지 등의 잡지는 우리에게 지식 정보를 제공해주는 하나의 루트가 된다. 나도 과거 한 때 장준하 선생이 발행하던 <사상계>라든지 강원룡 목사가 운영하던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발행하던 <월간 대화> 그리고 짧은 시기였지만 함석헌 선생이 만들어내던 <씨알의 소리> 등을 읽으며 지적 욕구를 달랬던 적이 있다.

 

인터넷의 발달도 사이버 공간이 한없이 확장된 오늘날 이런 잡지를 보는 일이 많지 않다. 모든 게 변하는 추세에서 잡지라고 이외일 수 없는 줄 알면서도 요즘 잡지는 나의 눈을 다른 데로 돌리게 만든다. 가끔 금융기관 등에 일 보러 가서 번호표를 뽑아 들고 기다리게 될 때 그곳에 비치된 잡지를 손에 잡는다. 하지만 너무 현란해 금세 제 자리에 꼽고 만다. 읽을 내용은 거의 없고 광고용 칼라 사진에 화사한 그림들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시대의 반영이려니 하다가도 내 정서와는 합치되지 않음은 피할 도리가 없다.

 

그러니까 요즘 잡지는 상품 광고지의 역할이 큰 것 같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그 광고들도 사람의 내면을 채워주는 것은 거의 없다. 모두 외면의 드러냄과 관계되는 광고물이다. 화장품이라든지 옷, 또는 스포츠 레저 용품 거기에 재테크 금융 상품 광고 등이 페이지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다. 나와 무관한 것들이니 외면하면 그만이지 하면서도 나라 장래를 생각할 때 염려의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 중에 1년에 네 번 빠지지 않고 나에게 배달되는 잡지가 있다. <농촌과 목회>라는 계간지이다. 내가 잘 아는 한경호 목사가 만들어내는 농촌 목회 전문 잡지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이런 잡지에서 외모엔 신경 안 쓰고 내용만 고집하는 옛 정취를 맛본다. 여러 가지 경제 여건이 따라 주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잡지가 무척 소박하다. 꾸밈이 없다는 말이다. 책의 무게로 보아 재질도 재생용지가 아닌가 싶다. 표지에 판화 작품이 들어가 있지 않다면 검정 많아야 붉은 색 글자가 가끔 가세하는 1950년대의 <사상계>와 다를 게 없을 것같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논문에서부터 농촌 목회 이야기, 목회 단상, 성경과 농사, 협동조합 이야기에 해외 농촌 선교 이야기까지 너무나 다양하다. 무엇보다도 농촌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내용들이라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이 생생하다. 탁상에서 나오는 농촌 목회 이야기가 아니라 실천 가운데 생산되는 이야기여서 얻는 유익이 크다. 나는 그 중 편집위원장이자 실질적인 발행인인 한경호 목사의 권두언을 꼭 읽는다.

 

그가 세상을 보는 눈, 목회관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힘을 내 뿜기 때문이다. 며칠 전 받은 <농촌과 목회> 2014년 여름호(통권 62호) 권두언 제목은 '세월호와 한국 교회'였다. 그는 이 글에서 세월호 침몰 사건은 이 사회의 자화상이란 것과 우리 기독교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특히 폐기 직전의 배를 일본에서 수입, 개조해 사용한 것은 오로지 돈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명의 소중함보다 이득이 먼저인 사고(思考)에서 이런 사건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그는 강조하고 있다.

 

성도를 더 많이 끌어 모으기 위해 빚을 내서라도 예배당을 신축 증축하는 교회와 다를 게 뭐가 있느냐는 것이다. 한 목사는 이렇게 권두언을 마무리하고 있다. "…세월호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기독교인들의 책임이 더 무겁다. '바알에게서 떠나 나에게로 돌아오라!' 이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의 귀로 듣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세월호 사건은 계속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참으로 두려운 경고가 아닐 수 없다.

 

<농촌과 목회>에는 매 번 빠지지 않고 특집을 꾸미는데, 이번 기획 특집은 지난 호에 이어 '한국 기독교 사상의 광맥을 캐본다(2)'이다. 서남동, 안병무, 현영학 등 민중신학을 체계화하는데 힘을 보탠 학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분야 관련 학자들의 신학적 변천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우리의 신앙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교계에 일침을 놓는 글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분들의 이론 전개의 근거는 오직 예수님이다. 갈릴리 무지렁이들 가운데 즐겨 계신 예수님,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장애인들을 편애하신 예수님 말이다.

 

10 년 가까이 <농촌과 목회>를 받아 보고 있다. 임지를 옮겼는데도 끊어짐 없이 보내오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정성에 값하지 못하고 있다. 구독료 보내는 것도 번번이 빠뜨리고 있으니까. 열심히 읽는 것, 그래서 나의 목회에 도움 도구로 삼는 것, 그리고 교계의 약한 고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 내가 이 계간지를 읽으며 꿈꾸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농촌교회와 목회자를 위한 전문 계간지라는 기치를 내 걸고 고군분투하는 <농촌과 목회>의 무궁한 발전,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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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2014-07-10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촌과 목회] 2014 여름호가 비치되어 있지 않아 같은 저자의 비슷한 책에 서평을 올린 것입니다.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8.15 광복 이후 우리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에서 시작해 현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11명의 대통령을 거치며 굴곡의 현대사를 이어왔다. 좋든 싫든 그 11명은 우리의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이끌어 왔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바로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지렛대 역할을 했다. 따라서 국민은 늘 대통령의 입을 쳐다 보며 삶의 질 제고를 꿈 꾸었다. 대통령은 기자회견의 자리에서 아니면 국무회의에서 또 국회 시정 연설을 통해 그가 펼칠 국정 철학을 국민들에게 알려왔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대통령이 이렇게 알리는 국정을 준비하는 데는 많은 참모들이 매달리게 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연설비서관이 정리해서 올린 문건을 중심으로 대통령은 국민 앞에 발표를 하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 용 문건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재미있게 하는 참모들이 있다. 의무감 뒤에 따르는 프라이드도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 중 하나에 속하는 이가 <대통령의 글쓰기>를 쓴 강원국이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 두 분 대통령에게 연설문을 작성해서 올린 연설 비서관이었다. 한 사람도 아닌 두 분의 대통령에게 중용되어 일을 하면서 보고 느낀 바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는데, 독자들의 반응도 꽤 좋은 모양이다. 출판 두 달만에 20쇄를 찍는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책 제목처럼 대통령의 글쓰기라기보다 솔직히 지은이 강원국의 글쓰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또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으로부터 글쓰기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그렇다면 두 전직 대통령은 글쓰기에 관한 한 상당한 경지에 도달해 있는 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대 대통령들 중 자기 생각을 글과 말로 거침 없이 표현했던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지은이가 모셨던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들 정도가 그 범주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에게 붙는 별칭 중 하나가 '수첩 공주'이다. 수첩에 깨알같이 적어 와서 그것을 읽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의 독서량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수첩 공주 운운 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최근에는 개각을 하면서 보기에도 거북스럽게 회전문 인사가 되풀이되자 언론에서는 수첩에 적어둔 인사풀이 동이 나지 않았나 의심을 받기까지 했다. 대통령이 이 정도면 연설 비서관을 비롯해서 참모들이 좀 잘 모시면 표가 덜 날 텐데 그것도 여의치 않은 것 같다.

 

이 책은 글쓰기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더 구체적으로 자기의 생각으 글로 매끄럽게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봐야 할 책이다. 지은이가 두 대통령에게서 받은 글쓰기의 영감은 의식하든 하지 않든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계발하기만 한다면 본인도 놀랄 정도로 좋은 글을 생산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이 책은 불어넣어 주고 있다. 지금까지 시중에 나와 있는 글쓰기 책들은 원칙과 당위론적 내용으로 채워져 내 것으로 만들기에 어려움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머리에 머무는 글쓰기를 벗어나 손으로 직접 쓰게 만드는 비법을 가르쳐 준다.

 

이 책은 들어가는 말과 나가는 말격인 집필 후기를 빼고 모두 이야기 열 마당 328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마당과 장에서 최고 통치자 대통령과 연설 비서관 사이에 오고 가는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어서 무엇보다 좋았다. 대통령은 권위를 좋아하고 체면에 민감하며 상황 논리를 꿰뚫는 그야말로 우리 범인과는 별종으로 이해되기 쉬운데, 지은이 강원국이 소개하는 두 대통령(김대중 노무현)은 그렇지 않다는 것에서 먼저 친근감을 갖게 한다. 각 마당과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장들 속엔 그런 정감 넘치는 모습들이 세밀하게 스케치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 몇 개를 적기(摘記)하면 가령 이런 것들이다. 3.대통령과 축기 경기 한판-생각의 숙성 시간을 가져라, 7. 손녀 뻘 되는 비서 앞에서 연습하는 대통령-결국은 시간과 노력이다, 8.대통령 전화 받고 화장실에서 나온 이야기-메모하라, 11.짚신으로 나물을 만들 수 없습니다-자료가 관건이다, 17.국민 여러분 개해가 밝았습니다-시작보다 중요한 퇴고, 21.대통령의 언어 vs 서민의 언어-쉽게 쓰자, 25.손목시계에 침묵이라고 써놓은 김 대통령-잘 듣고 많이 말하라, 28.어느 연설보다 위대한 웅변 '눈물'-이미지를 생각하라, 31."하느님 뜻에 따르겠다니요?"-유머에도 법칙이 있다, 37.국민을 위한 짝사랑 연서-편지를 써야 할 때, 40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꽃이 되었다-거명하기 등

 

이야기 열 마당 속 40 개의 장 중에 생각나는 대로 정감 넘치는 것들을 위에 열거했지만 각기 장이 모두 독자를 끌어들이기에 적합한 내용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 책은 지은이 경험의 산물임을 두 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경험을 허투루 풀어놓지 않는다. 책을 손에 잡으면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지만 그렇다고 결코 가벼운 책이 아니다. 맨 뒤에 수록된 48 권의 참고 문헌은 이 책이 한 권의 에세이(小論)집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의 무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 강원국은 두 대통령 밑에서 연설 비서관으로서의 생활이 행복했다고 회고했지만 솔직히 그 생활이 그렇게 행복한 생활이었을까 의문이 간다. 왜냐하면 많은 독서량을 확보하고 있으면서 말도 잘 하고 글도 잘 쓰는 똑똑한 대통령을 모신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긴장 풀린 호락호락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말로 유명한 김영삼 대통령 같은 분과 함께 일하는 것이 부담 없고 훨씬 여유가 있지 않을까. 아니면 군대식으로 밀어붙이는 현대 신화의 주인공 이명박 대통령이나 수첩이 없으면 모든 게 올 스톱 되는 현 박근혜 대통령 같은 분이면 널널하게 비서관 생활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다른 대통령에 비해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을 경외(敬畏)로운 위치에 두고 내용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부족한 점이 있을 때 참모들이 보완해 줘야 할 인물이라는 것을 지은이는 지적하고 있다. 반면 대통령이 가진 훌륭한 정치적 경륜과 뚜렷한 역사의식 그리고 사람에 대한 애정에서 오는 리더십이 국민에게 잘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연설 비서관 등 참모들의 역할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노무현 대통령을 우리가 슬픈 마음으로 추억하는 것은 그분이 가진 서민 정서 때문일 것이다.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글을 잘 쓰고 싶은 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희망 사항이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는 책으로 나는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를 권하고 싶다. 바쁜 국정의 한 가운데 서 있으면서도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두 대통령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런 노력하는 대통령 밑에서 참모로서 또 얼마나 신명나게 뛰어야 했는지, 그렇게 노력하고 뛴 결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글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바로 글을 잘 쓰기 위해 그렇게 해 보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받아들여진다. 글쓰기에 대해 안내하는 책은 많되 진정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 책을 독파함으로 그 이유를 명확하게 짚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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