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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신경림 지음 / 우리교육 / 199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에도 수십 종의 새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오늘날을 책의 홍수시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음의 양식이 되는 책을 선택해서 읽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나는 모처럼 좋은 책을 읽고 기쁨을 누리는 행운을 맛보았다.

이 책을 읽기 전, 신경림이 참여시인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으로 수록 시인 선정에 균형을 잃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순수 참여 모더니즘 등 유파를 가리지 않고 1권에서는 정지용에서 천상병까지 22명의 시인을, 또 2권에서는 김지하에서 안도현까지 23명의 현역 시인의 훌륭한 시들을 골고루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균형감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1권에서는 거의 신 시인이 직간접적으로 교유를 나눈 사람들을 중심으로 글을 썼고, 2권에서는 직접 시인들을 찾아다니며 대담을 나누는 등 발로 뛰면서 쓴 것들이어서 그만큼 현실감이 있었다. 따라서 읽기가 편했고 감동도 진했음은 물론이다. 신경림 시인의 교우 폭이 얼마나 넓은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전에 사석에서 신 시인이 사회문화운동 단체의 감투를 자기만큼 많이 쓰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이것도 부지런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신경림 시인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리라.

시를 읽으면 우리의 마음이 순수해진다. 그 순수함 속에서 진실과 정의, 밝고 맑음을 그려보고 추구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러나 지금까지 쏟아져 나온 수많은 시들은 이러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미사여구의 나열, 심한 비약과 상징에서 오는 언어의 유희는 오히려 감정을 혼돈시키기만 했고 나아가 시를 소수 사람의 소유물로 만든 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신경림이 위의 책에서 소개한 시들은 다르다. 감화와 생기와 영감으로 힘을 북돋아 주는 시들을 모아 소개하고 있어 이 책은 나에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어느 시는 슬픔으로 눈물을 머금게 하고, 어떤 시는 조용히 사색에 잠기게 하며 또 다른 시는 감정을 응축시켜 불의한 사회를 향해 분노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시들에 깔려 있는 하찮은 것들에 대한 깊은 애정은 자연스럽게 우리로 하여금 하찮은 것들에 대해 덩달아 애정을 갖게 만든다. 이러한 뭉쿨한 감동의 교차는 신 시인의 쉬운 문장력과 현장감 있는 해설이 뒷받침하는 측면도 클 것이다.

나는 이 책을 각계 각층의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권하고 싶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은 감정을 순화시켜 공의에 입각해 깨끗하게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교직에 있는 사람들은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 풍요로운 지침서로 삼기 위해, 농민들은 농촌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열등감의 극복을 위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못 배운 것이 죄가 아니라는 사실의 확인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하면서도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 회복을 위해 이 책 읽기를 권한다. 그 외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도 이 책을 읽고 계산적인 삶으로부터 순수함을 되찾는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경쟁의 논리와 물신 숭배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순수와 겸양 그리고 양보와 진실의 미덕이 인간적 삶에 큰 장점임을 이 책은-소개한 시인들의 삶과 시를 통해서 그리고 글쓴이의 해설을 통해서-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것, 못난 사람끼리 만나면 아무도 못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쉬운 문장으로 우리에게 보여준 이 책은 분명 이 사회를 맑고 깨끗하게 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책을 읽고 맛본 순수한 감정이 나의 마음을 오랫동안 붙들어 줄 것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갖는다면 우리 사회가 보다 순화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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