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들지 않는다 - 젊음을 죽이는 적들에 대항하는 법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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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자연스레 그의 모든 글을 탐독하게 된다. 그렇게 한때 보르헤스의 전작주의자가 되었고, 카뮈의, 울프의 전작주의자이기를 소망했다.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처음부터 깜냥 밖의 일이었으므로 그저 나는 읽었다. 읽은 책들을 아껴 보관했다. 쓰는 것보다 더 많이 읽는 자가 되어 또 다른 작가들의 전작주의자이기를 꿈꾸었다. 방대한 소설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난 볼라뇨. 마흔 넘어 소설을 쓰기 시작한 제발트. 일흔두 개의 가명으로 소설과 시를 발표했던 페소아. 내게는 영원히 《뉴욕 3부작》의 작가로 남을 폴 오스터.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이 전작주의의 여정에 어느 날 마루야마 겐지가 착륙했다. 파트릭 모디아노와 함께였으나 이상하게도 두 작가를 같은 책장에 꽂은 기억은 없다. 어쩌면 그 거리만큼 독서의 진폭이 아주 조금은 넓어지기도 했을까. 책을 읽는다는 게 사실 그렇지 않던가. 사뭇 다른 목소리를 채택해 각각의 책을 따라가는 경험 말이다. 페소아가 일흔 개 넘는 필명에 부여했던 정체성처럼 각기 다른 글 앞에서 조금씩 다른 성향을 지닌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겐지를 읽을 때 나는 리카르두 레이스가 된다. 그리고 보네거트를 읽을 땐 알바루 드 캄푸스가, 드릴로나 핀천을 읽을 때는 바롱 드 테이브가 되는 것 같다. 말하자면, 굳이 설명하자면.

 

그렇게 나는 겐지 소설의 독자로 남았고, 가끔 겐지의 에세이도 챙겨 읽는다. 지난봄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를 접했고, 이즈음《나는 길들지 않는다》를 읽었다. 이 에세이집은 지난 2010년 《당신의 젊음을 죽이는 적(あなたの若さを殺す敵)》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던 것인데, 제목에서 짐작할 테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뼈도 못 추리게 단호한 목소리로 가득하다. 이미 에세이를 몇 편 읽은 독자라면 새삼스러울 것 없는 독설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겐지는 몇 가지 전제를 두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야생동물이다. 가족과 제도, 국가라는 시스템에 둘러싸여 살아가지만 실상 이 세계는 약육강식의 법칙에 지배받는 정글이며, 그 정글의 주민답게 사는 것이 인간으로서 진정 가치 있는 삶이다. 이는 그가 이 에세이집의 첫 도입부에서 거론하는 참새 이야기에 집약적으로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그 참새는 성깔이 고약한 때까치와 무법자인 까마귀의 훼방을 요리조리 교묘하게 피하면서, 또 참매와 산무애뱀과 들고양이의 기습 공격을 가볍게 받아넘기면서 유유자적 오늘도 자신의 생명을 즐기고 있다.

(중략)

늘 혼자이면서 실로 즐거워 보인다. 아침 일찍 일어나 금빛 햇살 속에서 기운차게 짹짹거리며 마당 온 데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그러고는 많지도 않은 소박한 모이를 사뭇 맛있다는 듯이 콕콕 쪼아 댄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적이 될 상대의 접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느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한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pp. 12-13

 

참새는 인간 수명에 비하자면 한없이 짧게 살다 간다. 그러나 찬란하게 생명을 누린다. 겐지는 거기에서 ‘자립한 젊음’을 보았고, 그로 인해 한 생명이 그토록 생기발랄하고 순수한 기쁨으로 가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젊음을 뜻하지 않는다. 예컨대 가족과 직장, 국가를 비롯한 지배자들, 숱한 측면에서 당신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들이 있지 않은가. 모종의 목적을 지니고, 아무 계산 없이 서 있는 당신을 휘두르려는 사람들 말이다. 겐지가 강조하는 자립한 젊음이란 이들로부터 자립하려는 의지를 가리킨다. 자신의 저력을 탐색하고 이를 힘껏 발휘하는 태도에 가깝다.

 

겐지에게 이는 하나의 제안이라기보다 마땅히 누려야 할 인간의 특질이자 특권이다. 탄생의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치닫도록 설계된 생명에 저항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자연히 그의 목소리는 절박하게 단호해진다. ‘적’에 대해 말하는 자는 그럴 수밖에 없다. 당신의 젊음만이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지켜내려면, 누군가에 의해 삶이 묶이지 않으려면.

 

 

나는 언제나 편한 변혁만을 추구하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팔아먹는 자로 추락하기 위해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아니다. 지금의 나여도 괜찮은 것인가 하는 자문을 도저히 지우지 못하는 당신을 상대로 묻고 있는 것이다. 

p. 88

겐지의 단호한 태도는 아슬아슬하게 진실을 가리킨다. 육성이 깊이 개입된 메시지에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약함을 윽박지르고 값진 생명, 삶의 가치를 말하는 이 목소리를 고깝게만 들을 일은 아니다. 그는 요즘 젊은 것들 운운하는 기성세대와도 궤를 달리 하며, 타인을 경멸할 때도 존경할 때만큼이나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약한 마음에서 태어난 환영에 호락호락 순응하지 않을 뿐.


 

문단을 등지고, 온건한 위로를 바라는 독자를 등지고, 겐지는 한결같이 할 말을 한다. 그 자신이 표현한 바를 따르자면, “일일이 사는 의의를 찾지 않고는 못 배기는 약자 중의 약자”(p. 231)이기 때문일 텐데, 이제 나이 일흔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도 여전히 투쟁심을 잃지 않는 이 반골의 정신이 신기하고 부럽다. 《새조롱을 드높이》였던가. 여전히 꼿꼿한 겐지의 목소리에서 M읍을 찾아가던 한 남자의 뒷모습이 언뜻 떠오른다. 공교롭다. 그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역시 새 이야기가 나왔다. 사내가 덧문을 열자 한 마리 피리새가 앉아 있었다. 그 녀석은 사내의 얼굴을 쳐다보고, 휘파람 같은 소리로 울었다. 기억한다. 그 새는 M읍으로 저 혼자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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