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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님의 꽃 중...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그러면 그가 서 있는 자리마다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리라.
법정스님의 홀로사는 즐거움중..

꽃은 하루아침에 우연히 피지 않는다.

여름철의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모진 겨울의 추위 속에서도 얼어 죽지 않고 참고 견뎌낸
그 인고의 세월을 꽃으로 열어 보인다.
법정스님의 홀로사는 즐거움중..



어떤 사물을 가까이하면 은연중에

그 사물을 닮아간다.
꽃을 가까이하면 꽃 같은 인생이 된다.
법정스님의 홀로사는 즐거움중..

꽃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그에게 있는

아름다운 침묵이다.
소로우의 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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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결국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 그 기억이 현실적으로 중요한가 아닌가 하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상관이 없지. 단지 연료일 뿐이야. 신문의 광고 전단지나, 철학 책이나, 에로틱한 잡지 화보나, 만 엔짜리 지폐 다발이나, 불에 태울 때면 모두 똑같은 종잇조각일 뿐이지. 불이 '오, 이건 칸트로군' 이라든가, '이건 요미우리신문의 석간이군' 이라든가, 또는 '야, 이 여자 젖통 하나 멋있네' 라든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타고 있는 건 아니잖아. 불의 입장에서 볼 때는 어떤 것이든 모두 종잇조각에 불과해. 그것과 마찬가지야. 중요한 기억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기억도, 전혀 쓸모 없는 기억도, 구별할 수도 차별할 수도 없는 그저 연료일 뿐이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둠의 저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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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첩에 끼워져 있는 나는 언제나 내가 아니라 나인 듯 하다.
사진 속의 내가 어딘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진다. 생긴 모습도 느낌도 사진 속의 그를 기억하는 지금의 나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나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사람이거나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 속해 있는 또 다른 그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것도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
기억들을 마치 필름을 연결하듯 죽 이어서 돌리면 아마도 내게 수많은 방이 있고 나는 필요에 따라 이 방 저 방을 배회하는 모습일 것이다.
나를 입증할 수 있는 것은, 불완전하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의 이야기 밖에 없다. 때로는 실제와 다소 틀리겠지만 나는 그 이야기 속의 나로서 정의 되어진다.
결국 지금의 나는 기억되고 있는 현재인 것이다.
내가 살아간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은 나와 관련되어진 기억을 지속시키는 일이다. 내게서 혹은 다른 사람에게서 나에 대한 기억이라는 것이 모조리 사라지거나 그것이 불필요해진다면, 나라는 의미도 그만큼 희미해지기에,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니거나 전혀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황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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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은 고향을 떠나 얼마나 멀리까지 가도 여전히 정신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아마 어떠한 과학자도 아직까지 이것을 계산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확신 있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 정신은 고향으로부터 아주 멀리 떠나 있을 수 없다. 기계는 고향을 떠나 얼마나 멀리까지 가도 여전히 기계일 수 있을까? 이론상, 기계는 파괴되지 않는 한 끝없이 멀리까지 갈 수 있다.

웬델 베리의 <삶은 기적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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