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청포도가 마당 가득히 열리는 넓은 한옥집에 살았었다.
아파트로 가기 위해 이십 년 전에 팔려 지금은 비료창고로 쓰이지만 새 주인이 한번도 수리를 한 적이 없어서 옛날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가끔 옛날 집이 있는 동네로 가보면 소록소록 기억들이 신기할 정도로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골목의 놀이와 친구들이 거짓말처럼 내 눈 앞에 보여진다. 그래서 동화 속의 소년이 된 기분에 젖기도 한다. 녹슬고 찌그러진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모든 것이 온전히 옛날 그대로 돌아오는 마법 같은 일들이 펼쳐질 것만 같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이십 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도 십 년이 넘었다. 
여전히 아버지가 그집에 살고 있어서, 옛날처럼 서울에 살고 있는 아들이 보고 싶어 연락도 없이 불쑥 나를 찾아올 것 같기만 하다.
<황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