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내리는 날 그는 큰 봉투 세 개를 들고 우체국에 찾아왔다. 등기로 보내는 우표를 꼼꼼하게 붙이는 그의 손을 바라보며 정혜는 봉투 겉봉에 씌어 있는 신문사 이름들을 눈여겨보았다.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모양이었다. 미스임이 잠깐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자리를 떴다. 비좁은 공간에 그와 함께 있게 되자 정혜는 잠시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저기…그녀는 서둘러 말했다. 우리 집에 오늘 저녁 오셔서 같이 식사하시지 않겠어요? 그는 놀란 듯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그가 내려놓은 큰 봉투의 오른쪽 귀퉁이에 붙은 우표가 떨어질까 겁내듯 힘주어 누르고 또 눌렀다. 그냥… 회색빛 고양이가 집에 있는데 한번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고맙습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지금은 너무 지쳐서… 사흘 밤을 새웠거든요. 정혜의 얼굴이 붉어지자 그는 얼른 말했다, 오늘 가겠습니다. 정혜는 지친 그를 자기 집의 식탁에 앉게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향이 좋은 따뜻한 차를 마시게 하고 싶었다. 여기에는 아무런 추잡한 감정이 없는 거야. 나는 전혀 부끄러워할 게 없어. 그녀는 자기를 타일렀다.
우애령의 <정혜> 중에서
영화 <여자, 정혜>의 원작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