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열차 바닥에 그려진 그와 나의 그림자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선배의 머리가 까막까막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머리가 내 어깨에 닿아서 금방이라도 그와 내가 하나의 그림자로 포개어질 것만 같았다. 나는 얼음 조각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그에게 비스듬히 어깨를 기울여 보았다. 그에게 다가가는 시간은 그와 내 거리가 1미터도 넘게 떨어져 있는 것처럼 오래 걸렸다. 하지만 정작 그의 머리가 내게로 가까워지자 나는 바보처럼 놀라서 재빨리 어깨를 움츠렸다.
혹시 그가 잠에서 깨어 내 맘을 눈치챈 거 아닌가 싶어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그는 여전히 졸고 있었다. 가까이서 그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커다란 키와 갸름한 얼굴에 잘 어울리는 웨이브 머리, 선탠을 한 것처럼 가무잡잡하고 매끄러울 것 같은 피부, 진하고 긴 속눈썹과 반듯한 콧날, 그리고 또렷한 입술 선. 나는 그의 입술을 보다가 그만 부끄러워서 얼른 시선을 내려버렸다.
<한국의 명수필 2>, 김유진의 '7월을 닮은 남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