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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더라?
전동차에서 눈이 마주친 한 여자가 어디선가 본 듯 낯이 많이 익었다. 나는 아주 옛날까지 생각 속을 뒤져보지만 그녀에 대한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여자도 나와 같은 느낌인지 그 다음 역에서 내릴 때 잠시 깊은 눈길을 내게 건넸다. 어디론가 총총히 사라져가는 여자의 뒷모습이 어쩐지 비현실적이고 아련한 꿈같았다.
그날 이후로도 가끔씩 생각이 나지만 그때마다 여전히 그 여자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여자는 그 순간 나를 알아봤거나, 지하도를 천천히 걸어 올라가 햇빛 속에 나를 기억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서로의 그리움이 닮아서 그랬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황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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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는 결심했다. 1월 1일 아침 일찍 신들의 아버지 주피터의 궁전에 참배하러 가는 도중에 만난 세 번째 남자를 내 평생의 남편으로 삼자. 주피터 신이시여, 부탁드리나이다. 좋은 남편을 보내 주시옵소서, 라고.

새해 첫날 새하얀 헝겊을 머리부터 쓰고, 나는 듯이 집을 나섰다. 숲 속 좁은 길에서 첫 번째 남자와 만났다 보기에도 지저분한 털북숭이 신이었다. 숲 출구 자작나무 밑에서 두 번째 남자와 만났다. 비너스의 발은 딱 멈춰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는 늠름한 미남자였던 것이다. 아침 안개 속을 팔짱을 낀 채 비너스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아, 이 사람이다. 세 번째는 이 사람이다. 두 번째는, 두 번째는 이 자작나무야."

그렇게 소리치고 늠름한 넓은 가슴에 몸을 던졌다. 주어진 운명의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맡기다가, 중요한 때에 획 몸을 틀어 보다 나은 운명을 만든다. 숙명과 하나의 인위적인 기술, 비너스의 결혼은 행복했다 그 대장부야말로 주피터 신의 아들, 천둥번개의 정복자 발칸이었다. 큐피드라는 사랑스런 아이도 생겼다.

다자이 오사무의 <나의 사소한 일상>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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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잔잔한 행복 마음이 맞는 사람과 아침 공기를 마시며 산책할 수 있다면 손을 잡지 않아도 따스한 온기가 가슴으로 느껴져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면 욕심 없는 행복에 만족하겠다 마음이 닮은 사람과 한 곳을 바라보며 걸어갈 수 있다면 눈빛이 말하는 것을 읽을 수 있어 가슴으로 포근하게 슬픔을 안아줄 수 있다면 이름없이 소박한 삶에도 만족하겠다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벗이 되어 동행할 수 있다면 꼭 옆에 같이 살지 않아도 가끔씩 기분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에 들뜬 가슴 열어 세상을 헤쳐나간다면 때때로, 지치고 힘들다해도 손해보는 삶이라도 후회는 없겠다 세상에 빛나는 이름 남기지 못한다 해도 작은 행복에 만족할 줄 알았다면 명예가 사랑보다 귀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면 앞에 놓인 빵의 소중함을 경험했다면 진실을 위해 소중한 어떤 것을 희생했었다면 먼 훗날, 어둠이 조용히 나리울 때 삶의 잔잔한 행복을 차지했었노라 말할 수 있겠다 - 좋은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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