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다는 것이 이제 습관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그것 자체가 사는 한 형태가 되었다.
아무 곳에도 가지 않으면서, 목적지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떠나기.
잠깐 스치고 지나가듯 항상 떠나는 상태에 있기.
우리는 모두 인생을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들이다.
떠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나는 많이 죽었다.
로랑 그라프의 <매일 떠나는 남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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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문을 열고 뛰쳐나가면 어디론가 마음대로 갈 수 있는데, 하고 잠시 그 문을 응시하다가 사소한 몇 가지 일들을 떠올리며 문을 닫는다. 지극히 아주 사소한 일만으로도 그렇게 하루에도 수없이 문을 닫아걸지만 다시 보면 그 문은 자신도 모르게 언제나 열려있다. 문은 닫힌게 아니라 언제나 열려있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열려 있는 문밖이다. 수없이 떠나려고 했던 저 문밖으로의 세계, 이미 지나가버린 그 많은 날들 만큼 우리는 항상 그 문밖으로 떠나거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애써 하고 있거나 하려고 계획하는 일들이 여행용 슈트케이스를 사거나 혹 모를 강렬한 태양과의 조우를 대비하여 자외선 차단제를 살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떠나려 하기 때문에 하는 일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짐 캐리가 출근하다 말고 기차를 타고 2월의 몬톡 해변으로 향한 것처럼, 그의 말대로 충동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어디로 떠나고 싶을 때, 그저 저 문을 박차고 나갈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황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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