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이나 심해 다이빙은 일정 시간 동안 지속되는 특별한 행위이기에 얼마 안 있어 아무 일 없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지만 슬픔이나 좌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제한이 없고 근본적으로 예측불가능하며 낯선 경험일 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을 견뎌내야만 벗어날 수 있다. 밤에는 고통으로 시달리고 아침에 눈을 뜨면 또다시 슬픔이 찾아오는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삶은 용기 그 자체다.
용기는 또한 두려움을 아는 자만이 가질 수 있다. 적진에 뛰어들거나 럭비 경기에서 태클을 감행할 만큼 겁 없는 사나이라고 해서 그가 참된 용기를 가진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단순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진정한 행동이 마땅한 주목과 대가를 받지 못한 채 넘어가는 것이다. 긴장한 연설가, 벌벌 떠는 아마추어 배우, 주사기와 메스에 몸을 내맡긴 채 초조해하는 환자들은 모두 용기를 발휘하고 있다. (…)
일상생활은 용기를 요구하며, 때로는 엄청난 양을 필요로 하지만 인간이 되는 과정에서도 다른 식의 용기가 필요하다 경험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나고 색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그것이다.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 점을 정확하게 짚었다.
"우리가 대단히 낯설고 특이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마주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가 말하는 용기는 사랑이 오면 사랑을 받아들이고 죽음이 닥치면 죽음을 마주하고 재능의 대가로 삶이 지워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는 자세, 미미하게나마 세상에 나름대로 반응하는 자세를 가리킨다. 그 용기는 설사 드러나지 않는 비밀스러운 것이라 해도 삶의 내용과 질을 결정적으로 다르게 만들 수 있다.
A .C. 그레일링 <미덕과 악덕에 관한 철학사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