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말을 멈춰요?" 게오르그가 날 돌아보며 말했다. "계속해요. 당신 얘기는 언제 들어도 참 재미있어요." 계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게오르그의 화첩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그 중엔 내가 맨 처음 접했던 스케치들과 아주 흡사한 작은 스케치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그의 왼손 스케치였다 게오르그는 그것이 옛날에 그린 것보다 훨씬 흥미롭다고 했다. 선하나, 주름 하나하나까지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그걸 보자 게오르그와 처음 공원을 산책할 때 보리수 수피를 어루만지던 그의 그 손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게오르그의 손도 그 나무만큼이나 거칠지 느껴보기 위해서 그의 손 위에 내 손을 얹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 몇 분이 어쩌면 헛된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몇 분간 나는 마냥 행복했고, 그토록 행복했다면 그건 분명 헛되지 않은 것이리라.
그렇게 잔디 위에 앉아서 게오르그가 그림 그리는 걸 지켜보는 일은 즐거웠다. 그 순간은 내가 잡아둘 수 없는 한순간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는 그 기억을 몇 시간, 며칠이고 가슴속에 담아두고 느끼면서 그때마다 웃음 짓지 않을 수 없으리라. 나는 내 기억 속에 저장될 그 색체들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면서 봄바람에 스민 온기를 만끽했다. 그것은 어느 누구와도 나눌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누구도 내게서 그걸 앗아갈 수는 없다.

카티 나우만의 <오래된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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