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광화문, 종로, 인사동, 혜화동을 순례자처럼 돌아다녔다. 돌연 종적을 감추었다고나 할까. 현실적인 이유로 어느 날 나는 스스로 그 길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지난 봄이었고, 거의 십 년 만에 그 길을 걸었다. 이 거짓말 같은 사실은 서울에 살면서 늘 다니는 길만을 다닌 탓도 있다.

종로에서 광화문까지 걸었다.
아직 봄이 다 오지 않은 것은
그 길에 대한 나의 이해가 부족한 탓인가.
눈을 감으니 돌과 상처들의 노래가 들려온다.
역사에 거짓이 기록되는
헛된 꽃만 피우고 있다.

그날 내가 느낀 것을 메모한 내용 그대로이다. 그 길에서 아마 나는 영원히 나이를 먹지 못할 것 같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천천히 길을 걸으면, 내가 세상에 그저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는 아무 상관없는 세상 바깥의 구경꾼이 된다. 무엇인가를 생각하기도 하고 아무 생각을 하지 않을 때도 있다.
덧없는 순간들 속을 느리게 걷는 느낌은 꽤 야릇하기도 하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 손을 잡고 동네 한 바퀴 산책하는 일도 정말 즐거운 일이다.
이제 가을이 오면 ‘예술의 전당’에 자주 갈 것이다. 천천히 돌계단을 오르거나, 광장에 서성거리다가 노천 카페나 벤치에 앉아 생각에 빠져보기도 할 것이다.
아름다운 가을이 내리는 그 풍경 속에 나는 그렇게 있을 것이다. 계절이 오고 가는 길을 오래 걸어보는 일은 언제나 행복한 일이다.
<황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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