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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고정시키는 기계인 카메라는 그에게 눈의 연장 수단일 따름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사실 현장을 포착하는 것은 그의 눈이지 카메라가 아니다. 현실을 곧바로 번역하고 형태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눈이다. 그 결과 행복감을 주느냐, 혹은 재능이라곤 전혀 나타내 보이지 못하느냐는 오로지 이 눈에 달렸다. 교육과훈련, 인성의 문제인 셈이다. 왜냐하면, 무엇이 결정적이고 무엇이 결정적이지 않은지 한 번도 자문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란 그만큼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본능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숙고란 없다. 반사신경이 번쩍 하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계산에 의해 구도를 정할 짬이 없다. 하지만 이 반사신경이란 것도 알고 보면 예술적 교양을 폭넓고도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소화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순식간에 창조의 극에 달한다. 그 결과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런 일은 그의 지각력과 종합능력 때문에, 그리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이 오래 전부터 내면에 입력돼 있는 이미지와 순간적으로 합일을 이루기 때문에 가능하다.
피에르 아술린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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