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욕 중에 엄마는 계속 잔소리를 하지만 셜리는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에 빠져 듣지 못합니다. 환상적인 아이만의 상상의 세계와, 그것을 이해해 주지 않는 무심한 어른을 극명하게 대비해 보여주고 있는 존 버닝햄의 그림책이에요. 「셜리야, 물가에 가지 마!」에 이어 셜리가 다시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셜리가 욕조 안에 있는 사이 엄마는 목욕을 자주 해라, 옷 좀 던져 놓지 마라, 네 옷은 네가 개라 하고 잔소리를 늘어놓습니다. 셜리를 보지도 않고 말이에요. 페이지에서 욕조에 있던 셜리는 그 다음부터 엄마와 함께 있는 장면이 하나도 없습니다. 엄마는 엄마대로 셜리가 벌려 놓은 일을 야단치기에 바쁘고 셜리는 셜리대로 자신만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요. 흰 말 탄 기사를 만나고 성 둘레 연못을 떠다니는 왕과 왕비와 막대기 복싱을 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엄마의 세계와 셜리의 세계는 점점 벌어질 뿐이지요.
이 책에서는 잔소리만 하는 엄마를 왼쪽 페이지에, 모험을 떠난 셜리는 오른쪽 페이지에 나란히 대조되게 배열해서 공감될 수 없는 서로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작가는 엄마의 페이지를 단조로운 터치와 밋밋한 색으로 표현하고 배경을 색 없이 하얗게 비워둔 반면 셜리의 페이지는 선을 여러 번 겹치거나 다채롭고 밀도 있는 색을 칠해 무게감을 줌으로써 자신이 어느 편에서 둘을 바라보고 있는지 알려주어요. 부모님과 아이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책의 양쪽 면에 나란히 배열해 부모님과 아이 모두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 보게 하는 그림책입니다. 존 버닝햄 특유의 자유로운 그림과 어린 아이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이야기가 깊은 공감을 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