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름, 반 아름이 되는 오동나무나 가래나무라도 우리가 이것을 기르고자 할 때는 그 기르는 방법을 알 수 있다네. 하지만 자기 자신을 기르는 방법은 알지 못하고들 있지.
자신에 대한 사랑이 오동나무 가래나무만큼만 못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자신을 잊어버리고 자신과의 대화를 좀처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결과일세.

拱把之桐梓, 人苟欲生之, 皆知所以養之者. 至於身
공파지동재, 인구욕생지, 개지소이양지자. 지어선
而不知所以養之者. 豈愛身, 不若桐梓哉! 弗思甚也
이부지소이양지자. 개애신, 불약동재재 불사심야

김경일의 <사서삼경을 읽다> ‘맹자를 읽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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