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끊고서는, 그 때문인지 몰라도 수십 년 불면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전과는 달리 잠을 자다가 도중에 자꾸 깨어난다. 네 시간 이상을 계속해서 잠을 자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잠이 들어도 생각은 여전히 잠들지 못하는 것 같다.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낮은 지붕 아래를 걷다가 갑자기 높은 산으로 치닫기도 하면서 온 세계와 내가 사는 동네의 뒷골목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니는 것이다.
때로는 새벽이 와도 끝나지 않고 결국 나를 잠에서 깨운다.

침대 맡에 메모지를 항상 놓아 두어야 하는 까닭이 그렇다.
어둠 속에서 눈을 뜨는 그 순간 곧바로 옮겨 적지 않으면 나를 깨어나게 한 그 생각들이 나에게서 영원히 사라져버리거나 아니면 끝없이 맴돌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내 방의 여닫이문을 천천히 열었을 때는 차라리 잠속의 생각에서 나오지 않았으면 하고 다시 돌아눕기도 했다.
잠들지 못하고 떠올랐던 온갖 불면의 상념들이 이제는 잠속에서 사실적으로 헤매고 다니고 있는 것이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잠이 비처럼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는 깨어서 빗소리를 듣겠지만 그 또한 꿈속을 지나가는 고단한 뒤척거림일 뿐일 것이다.
어느 집의 마지막 불이 꺼지면 나도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고 싶다. 비 개인 아침의 산뜻함처럼 깨어날 때의 믿음에 위로 받으며 말이다.
<황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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