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 - 부채사회 해방선언
구리하라 야스시 지음, 서영인 옮김 / 서유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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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도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니, 누가 제 마음의 소리를 써 놓으신 거죠? 표지에 핑크핑크하게 그려진 돼지조차 괜스레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무려 이 책의 첫 문장이시다. 제목을 보고,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는 방법에 대한 궁리로 잔뜩 흥이 돋은 내 들뜸에 시작부터 시원하게 얼음물을 끼얹으며 첫 장을 펼쳐 준다. 갑자기 찬물 따귀를 얻어맞은 기분!ㅋㅋ

사실 초반의 3분의 1이 흐를 때까지도,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거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작가의 요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굉장히 일본적인 문장을 통해 둥글게 돌려서 표현한 탓인지, 아니면 단순히 내 이해력의 부족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읽다 보니 어느 순간 아, 결국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회라는 집단은 암암리에 개인으로 하여금, 집단을 위한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니 그것을 당연시하도록, 혹은 개인의 희생을 그들 삶의 보람이라는 듯 포장하고 세뇌시켜 왔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며 우리는 스스로를 희생하면서까지 타인과 사회를 위할 필요는 없다.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장 자신다운 삶을 지향하자. 그런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싶었다.

한때는 나에게도, 실업 급여를 받으며 이 책의 제목 그대로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살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실업수당이 나오는 3개월 기한이 다가오자 점점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그 말에 쫓기고 있었던 것 같다. 제 밥 벌이도 못하는 성인이 무슨 가치가 있나, 싶은 그런 자책과 조바심. 당시 나는 대학을 졸업한 직후 바로 구직을 해서 1년 반가량을 일한 후 처음 갖는 휴식기였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초조해할 이유가 있었나 싶다. 20대 초중반의 어린 나이였음에도 무려 '경력 단절'을 걱정하며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이게 결국, 내가 몸담고 있는 가정, 사회로부터 받은 압박의 결과였다 볼 수도 있겠다. 그때의 내 모습을 돌이켜 보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지금 당장, 가장 나답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취지의 이 글이 엄청 와 닿는다.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하고 노력하는 자만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불가피한 가치인데, 작가는 이런 세태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책장을 넘길수록 작가와 나의 가치관 사이에 괴리가 커지는 기분이었다. 비유 상 그렇다는 건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건지 모를 정도로 비약이 지나치다고 느껴지는 내용이 많았다. 예를 들자면, 길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 하게 하는 조례에 대해 '소비사회에서는 집이나 차의 소유 여부가 인간의 사회적 지위를 정한다. 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거리라는 상품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한다. 인간보다도 길바닥이 더 소중한 것이다.(page.122)'라고 표현한 부분이라던가. 그렇다고 해서 그런 생각이 틀렸다기보다는 나와 다른 부분이 많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일본어 중에 '前'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어른, 어른과 같은 능력·자격을 인정받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로, 제 앞가림을 한다는 뜻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자고로 사람은 제 앞가림은 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고 살 자격도 가치도 없다는 매정한 논리가 아니다. 자신의 권리와 존엄에 대한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그게 합당한 의무와 노력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사실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는 것은 비양심적인 일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는 내가 일하지 않는 만큼 더 일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음, 뭐 어찌 됐든 나는 그런 주의의 사람이기 때문에 작가가 피력하고자 하는 의견이 더 와 닿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단순히 내가 덜 깨인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고 뭐, 아직도 의아하거나 공감이 안 되는 부분이 많다.

세태에 찌든 나 같은 이는 알 수 없는 가치가 녹아있는 책. 나로서는, 가볍게 한 번 읽는 것만으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책이었다. 속세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이라면 작가가 말하는 삶과 비슷한 방식으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더 흐른 후에 읽어본다면 지금과는 다른, 좀 더 나은 감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본 서평은 북카페 책과 콩나무 서평단 자격으로 서유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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