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유희
이가라시 리쓰토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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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은 책일수록 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 된다.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좋을지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법정유희》는 일본에서 2020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인기에 힘입어 2023년 4월에는 문고본으로,

같은 해 11월에는 영화로도 개봉되었다.

일본에서 인기가 있었다고 해서 반드시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 거라고

보장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잘 팔리리라 예상해 볼 수는 있다.





#법정유희 를 쓴 작가 #이가라시리쓰토 는 법학을 전공하고 현직 변호사이면서

이 소설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변호사가 쓴 #법정미스터리 소설이라는데 당연히 눈길이 가고 이야기에 왠지 신뢰가 간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로스쿨의 학생들이 벌이는 '무고 게임'이라는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교내 '모의법정'에서 실제로 재판을 하듯이

피고와 원고, 변호인, 재판관의 역할을 맡은 이들이 법리를 다투며 재판을 한다.

'무고 게임'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피고는 자신이 '무고'함을(즉 죄가 없음을) 증명해야 한다.

어느 날 무고 게임에서 누군가가 '세이기'의 과거를 고발하게 되면서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이어진다.

그 범인을 찾으려다 찾지 못하고 무고 게임은 재판관 역할을 했던

'가오루'가 그만두겠다고 하여 더 이상 무고 게임은 하지 않게 된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세이기'는 변호인으로 이제 막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가오루'는 누군가 고소했다며 '무고 게임'을 열 테니 오길 바란다며

세이기와 미레이에게 메일을 보낸다.

오랜만에 학교로 간 세 사람은 다시 모의법정에서 만나는데

가오루는 칼에 찔려 쓰러져 있고, 미레이는 피가 묻은 채 서 있고

놀란 세이기에게 미레이는 자신을 변호해 달라고 하며 소설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법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난 만큼 잊고 있었다 생각했던

여러 법리들, 수업 때 들었던 내용들, 형법 시험을 두고 달달 외웠던 조문들...

법대에서의 추억들이 하나하나 떠올라서 더 재미있게 읽었다.

법정 미스터리 소실인 만큼 법학 관련 용어가 나오긴 하지만

역주가 친절히 달려 있고 어렵지 않으므로 관련 지식이 없더라도

읽는데 큰 어려움은 없으리라 본다.

'유희'라는 단어의 의미는 그걸 가지고 즐겁게 논다는 의미인데

법정에서 '유희'라니.

유죄로 보이는 증거들을 늘어놓고 너의 '무고'를 어떻게든 증명해 보아라는 무고 게임.

'가오루'는 '무고 게임'이라는 형식을 빌려서 재판관 역할을 하며

동기들의 모습을 보며 즐겼다.

자기 아버지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 몇 년간 철저하게 복수를 준비했던 가오루.

'무고 게임'도 그 준비이자 복수의 일환이었다.

결국 실제 법정에서 '미레이'의 무고를 증명해 보라는 수수께끼를 남기고 죽게 되는데...

소설은 세이기와 미레이가 과거에 자신들이 저지른 죄로

가오루가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어떻게 하는지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합당한 형벌이란 과연 뭘까 읽는 이로 하여금 고민하게 한다.

동해 보복이라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데

그에 대해 '가오루'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눈을 망가뜨린 범인을 내어 주면서 마음대로 복수해도 된다고 치자. 형벌이 존재하지 않는 무질서한 세상이라면 반쯤 죽이든지, 그야말로 목숨까지 빼앗을지도 몰라. 하지만 빼앗긴 시력의 대가로 목숨을 요구하는 건 아무래도 너무 과하지. 시력을 빼앗겼으니 시력을 빼앗는 것으로 용서해 주어라. 그게 눈에는 눈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야.

116p.



그렇다면 피해자가 합당한 형벌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느낄 때는 어떨까?

그런 생각에 이른 세이기는 드디어 깨닫게 된다.


의지할 수 있는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손을 더럽혀서 가해자를 벌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가오루가 최종적으로 도달한 결론 아니었을까.

그러한 시각으로 돌이켜 보면 그동안 해 왔던 무고 게임의 의미도 저절로 명확해진다.

296p.

소설의 막바지에 이르면서 가오루와 미레이의 행동이 이해가 되면서

아! 하고 깨닫게 되는데 그러다 반전! 이 나오고, 작가의 치밀함에 감탄하게 된다.

원서 표지는 여자 얼굴에서 입만 보이는 표지이다.

물론 제일 첫 사건은 '미레이'부터 시작되긴 했다.

그러나 이 표지만으로는 '법정 유희'의 분위기가 잘 전달되지 않는 듯하다.

한국에서 출간된 표지가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잘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모의 법정이든 실제 법정이든 '법정'에서 증명해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특히 법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읽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4백 페이지가 넘는데도 지루함 없이 술술 잘 읽혔다.

작가의 다른 책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한국에는 이 소설 포함 두 권만 번역되었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소설이 있으므로 번역가로서도 탐이 나는 작가이다.


#리드비출판사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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