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 말씀은 고난에 관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을 잘 아시므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난만 주신다. 설사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을지라도...
그리고 그 고난을 감당하는 중 반드시 피할 길을 만들어 주시며 결국 그 길을 통해 더 나은 결과에 이르게 된다...
전화위복이라는 우리의 속담과도 일치하는 말씀이다.
결국 고난을 제대로 감당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한단계 성장하는 것이다.
설교 말씀을 듣고 요즘 읽고 있는 브리다를 집어 들었는데 묘하게도 비슷한 내용이 반복된다.
"perhaps the times when it goes wrong are teaching you something. ... nothing in the world is ever completely wrong. ... even a stopped clock is right twice a day."
고난이 주어졌을 때 절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참 어리석다.
그 고난이 주는 가르침은 놓쳐 버리고 고통만 받으니 말이다.
난 일곱살때부터 서른이 넘도록 학교만 다녔다.
엄마 말처럼 공부라면 신물이 날만도 하다.
하지만 요즘 공부에 대한 아쉬움이 많다. 제대로 하지 못한 아쉬움...
학교 다닐때 수학 박사 학위가 있는 언니를 만난 적이 있다.
어느날 늦은 저녁을 먹으며 왜 또 공부를 시작했는지 물었다.
그 언니의 대답은, 이번엔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whenever you want to find out about something, plunge straight in"
제대로 한다는 것은 참 힘들다. 특히 고난이 동반 될때 더욱 힘들다.
어떻게 이 악물고 깡으로 버틸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버티고 나면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고난 없이는 성숙할 수 없다면, 주어진 고난을 제대로 보내야 과정과 결과 모두 온전히 만족스러울 것이다.
많이 겁나고 망설여지지만 오늘 감히 이렇게 기도한다.
허락하신 고난을 제대로 감당하게 해주소서...
Life is so complicated.
You had to take risks, follow some paths and abandon others.
She remembered Wicca telling her about people who followed certain paths only to prove that they weren't the right ones,
but that wasn't as bad as choosing a path and then spending the rest of your life wondering if you'd made the right choice.
No one could make a choice without feeling afraid.
(pp. 75-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