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사가 되기 전에는 몰랐습니다만 - 슬기로운 초등교사생활
최문혁 지음 / 푸른향기 / 2020년 6월
평점 :

엄마, 아빠 역시 부모님은 처음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처럼, 선생님도 내게는 그런 존재였다. 늘 완벽할 것만 같고 언제나 슈퍼맨처럼 나타나 모든 일을 해결해 줄 것 같은 존재들에게도 처음은 힘들고 어려웠을 거라는 점, 계속해서 배우고 자라는 중이라는 사실을 나 역시 사회 경험을 하고 나서야 깨닫게 됐다. 그때 선생님도 최선을 다하셨겠구나,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던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행동하실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들이 떠오르면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만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혼자 토라지고 섭섭했던 시간들이 어쩌면 사랑의 부족함이 아니라 대화의 부족함이 아니었을까. 선생님도 나를 알아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자라서 선생님의 입장에서 쓰여진 이 책을 만나게 되니 괜히 지나온 시간들이, 상처가 되었던 내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작년에 좋은 기회가 생겨 중학교에 4주 동안 강의를 간 적이 있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누군가를 만난다거나, 어떤 특별한 날의 이벤트 성 방문이 아니라 제대로 교실까지 들어가 아이들을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기분이 묘했다. 자유학기제를 담당하시는 선생님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교무실에서 대기하다가 수업 종이 울리기 5분 전에 앞장 선 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찾아가는 동안 얼마나 심장이 요란스럽게 뛰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며칠 동안 수업을 준비하며 상상했던 아이들을 마주하는 순간 그 초롱초롱한 눈빛에 이미 기절할 듯이 아득했던 기억이 난다. 가까스로 입술을 떼 인사를 하고 자기 소개를 하는 동안 딴짓 한 번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던 스무명 남짓한 아이들은, 걱정과 두려움에 덜덜 떨며 수업을 이어가는 내게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준비한 4주의 시간이 끝났고 아이들과 짧은 만남과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이별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학창 시절에 만났던 많은 선생님보다 작년에 만났던 아이들과 선생님이 된 나를 훨씬 더 많이 떠올린 것 같다. 선생님은 처음부터 선생님인 줄로만 알았지, 똑같이 첫 만남에 설레고 어색한 사이를 지나 서로를 알아가려고 노력하고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 부끄러웠다. 새로운 선생님을 기다리던 아이들도 나의 어린 시절과 같은 생각으로 나를 보고 있었을 생각을 하니, 좀 더 어른스럽게 능숙하게(?) 대해주지 못한 것은 아니었나 민망함이 밀려왔다. 미안, 나도 선생님은 처음이라서...

선생님이 되려고 준비하는 분들에게 어쩌면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책이 될 것 같다. 선생님이란 당연히 이렇게 해야 돼!가 아니라 선생님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여러 상황들을 대처하고 겪어가는 일들을 솔직하게 적어두었다. 나는 앞에서 바라보는 아이들만 보면 모든 역경을 다 이겨내고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생각을 고쳐하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는 다짐만으로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견뎌낼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두었을 때에 오는 괴리감처럼 말이다.
교사가 이러면서 배우고, 발전하고 성장한다고는 하지만 반복되는이런 부딪힘과 곤란함 때문에 가끔 무기력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교사도 사람이라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완성되어 간다고는 하지만, 조금 더 완성된 상태로 교직생활을 출발했더라면 아이들도 나도 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을 가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조금은 미안해지는 날이다. - P50
나는 강하지 않고, 독립적이지 않아서 항상 누군가 나의 편이 되어준다는 확신을 가져야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성격이다. 그래서 오히려 의도적으로 ‘내 편이 되어줄 확신‘을 생각하며 지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자그마한 상실감은 금세 내 마음의 크기만큼이나 거대해지고 어느새 나를 집어삼킬 것이다. 나는 모두의 진심 어린 편이 되어 주고 싶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도 작은 힘이나마 나한테 내 편이 되어 다가오면 좋겠다. - P64
나도 꽃이다. 아름답고 싶고, 매력 있고 싶고, 꾸준히 피어나고 싶은 그런 꽃이다. 누군가에게는 길가의 흔하디흔한 꽃 한 송이로 다가갈지도 모르며, 누군가에게는 식물원 속 온실 구석에 위치한 아주 생소한 작은 꽃으로 다가갈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나를 힐끗 보고 ‘뭐야 별거 아니네‘라며 지나갈 것이다. 누군가는 내가 여기에 피어났는지도 모른 채 지나갈 것이다.
나는 꽃이다. 다른 이들의 판단에, 다른 이들의 생각에 따라 피고 지지 않는다. 그저 그대로 하루하루 조금씩 자라나는 아름다운 꽃이다. 그 곧은 당당함을 잃지 말자. - P69
아이들은 사랑받고 싶어 하는 의지가 어른들의 백 배 가까이 되는 것 같다. 그 열정이 웬만해서는 식지 않는다. 항상 선생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고, 표현한 만큼 다시 받고 싶어 한다. 이러한 현상은 일 년 내내, 별일이 없는 한 굴곡 없이 이어진다. 그렇게 천천히 시간을 두고 아이들과 대화하며 생활하다 보면 정말 진심으로 한 명 한 명의 아이들을 예뻐하게 되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때는 벌써 이별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아이들은 새로운 학년과 새로운 친구들, 선생님들에 대한 기대로 이미 마음이 떠나버리곤 한다. 그렇게 선생님은 마지막에 가서야 학생들을 정말로 사랑해버린다. - P79
우리 앞에는 아직 가보지 않은 더 많은 갈래의 길이 있다. 그리고 그 길은 지금 뿌연 안개로 덮여있어 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글의 맨 처음에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반에는 장난꾸러기들이 많다. 그리고 아이들은 모두 장난꾸러기여야만 한다는 생각 또한 변함이 없다. 우리 반 우리 아이들이 정말 순수한 ‘장난꾸러기‘로 행복할 수 있기 위해선 내가 안개를 쓸어가며 밝은 빛이 나올 때까지 많은 길을 가보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
슬픔과 무기력 틈새에서 책임감과 기대감이 싹트는 참으로 이상한 날이다. - P85
아이들은 어른들에 비해 조금은 더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줄 안다. 아이들은 스스로에 대해 충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고, 본인이 어떤 점에서 뛰어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표현하기도 한다. 지금은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 모두 어린 시절 그런 자신감을 뽐내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 우리가 어째서 커가면서 나를 깎아내리게 되었을까. - P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