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지종례 - 맛있는 학교생활을 위한 다정한 레시피
이경준 지음 / 푸른향기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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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와 '종례'의 각각의 뜻은 이미 잘 알고 있는데 '쪽지종례'라는 두 단어의 만남이 고개를 갸우뚱 하게 했다. 궁금한 마음으로 펼쳐들었다가 책장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자꾸 글자가 젖어들었던 책. 그제사 표지에 적혀있던 신통해 카피라이터의 한 줄이 이해가 된다. '이렇게 종례를 해주는 선생님이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 말이다.

담임을 맡게 된다면 학생들에게 짧은 편지를 써서 종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시작으로 한주의 마지막은 쪽지종례로 이어졌다. 어색해 하던 아이들이 주를 거듭할 수록 차분히 쪽지를 읽어내리는 상상만으로 나는 조금 뭉클했다. 의례 나이가 많으면 시전되는 '언니는~' '엄마는~' '아빠는~' '선생님은~' 같은 시작이 아니라 '너'와 '나'로 불리는 것도 좋았다. 수평적인 관계에서 말을 걸고 싶었다는 선생님의 깊은 배려가 좋아서 그대로 눈물을 왈칵 쏟기도 했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언제나 무뚝뚝하고 무섭기만 했던 6학년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의 사진을 한 장씩 찍어 인화하여 그 뒷장에 마지막 인삿말을 적어준 적이 있다. 활짝 웃고 있는 내 사진 뒷면에는 '차경이의 웃는 얼굴이 참 좋았어. 너의 웃는 얼굴은 주변을 환하게 해. 졸업 축하해.' 겨우 그 몇 마디가 내내 가슴에 남아 잘 보이는 곳에 놓고 두고두고 읽은 기억이 있다. 나는 그 말을 안고 중학생이 되어 더 많이 웃는 아이가 되었다. 그때의 기억외에는 12년동안 단 한 번도 선생님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기 때문일지 다정하게 쓰여진 쪽지종례가 내내 눈물이었던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선생님이 내게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성적으로 학생들을 줄세워 편애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친절한 답변과 좋아하는 것을 찾으라고 조언해주는 선생님이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상담한다고 불러 장래희망을, 성적을, 진학할 학교를 다그치는 선생님이 아니라 나라는 한 인격체를 존중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해주는 선생님이 있었다면 어쩌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을거라는 믿음. 그것이 자꾸 눈물을 쏟은 이유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즐거운 대화로 주말을 채우렴. 나는 네가 자존심과 자존감을 모두 갖추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더 바랄게 없겠다. 행복한 사람이 되렴. 쪽지의 다정한 끝마침 덕분에 중고등학생이 된 것처럼 용기를 얻고 힘을 얻었다.




시간과 장소를 나눈 까닭은 모두 편안해지기 위해서라고 나는 생각해. ‘시간‘과 ‘장소‘의 규칙을 이해하고 지키는 것. 이걸 한 단어로 말하면 ‘교양‘이거든. 시간과 장소의 규칙을 잘 지키며 하는 말과 행동이 차곡차곡 쌓이면, 모든 사람으로부터 ‘교양인‘으로 받아들여지게 돼. 교양인이 된다면, 어디에서도 존중받고 환영받는 사람이 도리 수 있단다.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 교실과 운동장에서 지켜야 하는 규칙을 지켜보자. - P19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단다. 네가 쉬운 일, 어려운 일을 맡는다는 것은 상이나 벌을 ㅂ다는 게 아니야. 운이 좋아서 쉬운 일을 맡은 것도 아니고, 벌을 주거나 믿음직해서 어려운 일을 준 것도 아니야. 어느 것 하나 쓸모없는 일은 없거든. 쉬운 일을 맡긴 이유는 네가 여유를 갖고, 곁을 살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어.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과 책임감이 돋보이게 되거든. 나만 즐거운 일은 순간적일 때가 많아. 그렇지만 힘겨움을 견디고 경험하는 즐거움은 주변까지 번져나가게 돼. 나는 너희들 한 사람이 세상에 즐거움을 퍼뜨리는 하나의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어. - P23

혹시, 내가 선생이라는 습관에 젖어서 너를 ‘학생‘으로 대하며 다치게 하고 있지는 않을까. 어쩌면 만년필이나 붓처럼 섬세한 사람을 분필, 유성매직처럼 대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고. 내가 좋지 않은 선생 습관에 젖어 있다면, 언제든 얘기해 주렴. 나도 마음으로 애쓰면 고칠 수 있지 않을까? 너는 친구들을 어떻게 대하니? - P36

사람은 다른 사람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을 때 진짜 어른이 된단다. - P40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할 때 즐거운지 슬픈지. 화는 언제 내고, 친구들을 대할 때 사람마다 다른 태도로 대하고 있지 않은지. 너의 모습을 스스로 관찰해보는 연습을 했으면 좋겠어. 자기 모습을 돌아보는 사람은 한 걸음이라도 좋은 쪽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거든. - P47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것은 어렵다. 한 사람을 관찰하고 마음 쓰는 일에 내 시간을 써야 가능한 일이다. 사람의 마음이 일종의 업무나 일이 되면 안 된다. 절대로 마음에 닿을 수 없다. 표정과 몸짓, 어투와 말을 읽고 상상해야 한다. 그래야 겨우, 그 사람 마음 근처에 다다른다. 상처 입은 마음은 다른 사람이 어루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글 같은 상처의 숲을 뚫고, 근처까지 다가와 준 사람의 마음기척이 느껴질 때, 스스로 치유하게 되는 것 같다. - P57

나는 네가 우연에 의존하지 않길 바라. 뜻밖의 좋은 결과에는 겸손할 줄 알고, 의외의 낮은 결과를 마주해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어. 그렇게 몇 년 지내며 진짜 실력을 닦으면, 머지않아 스스로 빛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 P93

편하게 고여 있지 말고 시도하렴. 실수해도 되니까, 그냥 한번 해보렴. 불안과 두려움에 지지 말자. 나이와 상관없이 독서하고 여행해야 더 깊은 사람이 된단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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