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0원
프레데리크 베그베데 지음, 문영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아레나2월호에서 소개받은 작가의 작품이라서 읽었는데 아주 괜찮았다

도서관에서 읽고 소장할 만한 가치가 느껴진다

직접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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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청목 스테디북스 58
에리히 프롬 지음, 설상태 옮김 / 청목(청목사) / 2001년 4월
평점 :
절판


어느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여간 곤란할 일이 아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리고 ‘무엇을 믿을 것인가’란 질문을 받는다면 허탈한 웃음과 함께 그냥 그 순간을 쉽게 넘겨버릴 수는 있겠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또는 잠자리에 누워서 한 번쯤은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세상을 오래 살았던 적게 살았던 상관없이 지금 자신의 상황에서 그러한 질문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는 없으니 말이다.

여유가 없는 삶... 누구는 책을 통해서 그렇게 말한다. ‘느리게 살아라‘고.. 하지만 현실이야 어디 그러한가. 하루하루 직장업무에 쫓기고 보고서니 프로젝트니 할 일이 태산같이 쌓여 있는데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또 누구는 말한다. '여유는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고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웃기지 마라‘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나 스스로가 모든 삶이 회의스럽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나에게 삶의 여유와 안정을 가져다 준 것이 있다.

위의 첫 번째 질문에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 각자는 자신의 일을 걱정하고 애씀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실은 오직 사랑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지만 불교를 믿고 있는 한 사람으로써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또한 두 번째 질문에 움베르토 에코는 ‘초월적인 윤리(종교)와 구별되는 자연적인 윤리가 있으며 그것은 바로 `이웃사랑`과 `깊은 사려`다`라고 말한다.

두 답변에서 같은 점을 발견하였는가. 바로 ‘사랑’이다. 가장 흔히 들어볼 수 있는 말 가운데 하나가 되어버린 ‘사랑’. 제목만 해도 3000여 곡이 넘는 대중가요 속에서 ‘사랑은 무지개처럼 소리없이 온다’는 최근의 '오버더 레인보우'란 영화 속에서도 흔히 발견한다. 그리고 각 개인이 직접 경험하고 느끼는 사랑까지 더한다면 온 세상이 사랑으로 뒤덮고 남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은 극소수에 불가할 것이다. 가슴아픈 사랑을 한 본인도 이제서야 그것의 윤곽만을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어렵고 잘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가, 존 그레이의 ‘화성남자, 금성여자’시리즈의 사랑의 실습 참고서라고 부를 수 있는 책들이 많이 팔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어떠한 것의 본질을 모르고서 접하는 많은 파편의 조각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르듯이 ‘이해’의 정도까지만 가능하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는 못 한다. 여기에서 이 책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나에게 삶의 여유와 안정을 가져다 준 것은 바로 책 한 권이었다. 에리히 프롬 Erich Fromm 의 <사랑의 기술 The Art of Loving>. 많은 사람이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쉽게 잊는 것일까. 요즘 TV를 비롯한 각종 방송매체를 관찰해보면 사랑을 단순한 게임으로 만들어버린다. 사랑이 사고 팔수 있는 물건처럼 ‘사랑을 권하는 사회’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는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립감과 분리감을 극복하게 하면서도 각자에게 각자의 특성을 허용하고 자신의 통합성을 유지시킨다. 사랑에 있어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다는 역설이 성립된다.’라고 말한다. 이 말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정상이다. 사랑은 어려운 것이므로... 너무나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잘 못된 것이다.

어느 회사의 광고 카피 중 ‘사랑은 항상 2%로 부족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 2%는 영원히 충족될 수 없을 것이다. 이유인 즉,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능동적인 활동이다. 그것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이해했을 때, 그리고 행동으로 옮겼을 때 그대가 원하는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을 애타게 기다리는 자여, 달려가서 잡아라! 그대가 원하는 사랑을... 그리고 느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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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 지음, 최승자 옮김 / 까치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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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따스한 바람이 부는 봄날에는 홀로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인적이 뜸한 곳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일상생활 속에서 벗어나 지금껏 억눌러 왔던 고민과 아픔을 풀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너무나 바쁘게 생활하다 잊어버리는 사람들과 추억, 그리고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게끔 한다. 그곳에는 하루종일 끊이지 않는 온갖 종류의 소음대신 대자연의 숨소리가 들린다. 소음보다도 큰 소리가 귀가 아닌 마음속으로 들리는 것이다.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모든 것을 듣는 듯한 그 순간이다.

막스 피카르트는 이 순간을 ‘침묵’이란 말로 대신한다. 그는 현대의 거칠고 투박한 소리를 냄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하는 사람들과 기계음 속에 갇혀 진실된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잡음과 소음의 사회를 조용하지만 논리적으로 강하게 비판한다. 막스 피카르트 Max Picard는 1888년 독일의 슈바르츠발트 지방에서 태어나서 하이델베르크 대학 의학부 조수를 거쳐 뮌헨에서 개업한 의사이다. 만년에는 스위스에서 문필 활동을 하다가 1965년 영면했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신으로부터의 도주>(1934), <우리 속의 히틀러>(1946), <인간과 그의 얼굴>(1952) 등이 있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누워서 조용히 생각해 보라. 오늘 얼만큼의 소음 속에서 생활을 했는가. 아침에 들고 나간 신문과 무의식적으로 본 텔레비전 그리고 이것들을 둘러싼 무수히 많은 광고 등 각종 미디어에서 쏟아져 나오는 자신과는 상관도 없는 무의미한 것들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 할 것이며, 또한 출․퇴근길의 복잡함 속에서 무사히 살아 남기 위해서 직접 소음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소음과 잡음의 삶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이제는 자연의 소리는커녕 바로 옆의 친구의 목소리보다는 기계음(화려한 이미지나 아주 객관적으로 비춰지는 숫자)을 더 좋아하고 신뢰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어느 날 문득, 간혹 이러한 사실을 눈치챈 사람들은 자연의 정적과 침묵을 얻기 위해 전원(田園)으로 간다.

그러나 이들이 소로우의 <월든>에 담긴 자연과 일체 된 삶이나 니어링 부부(<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의 땅에 뿌리를 둔 삶 또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오래된 미래>)의 생태학적인 삶을 생각하며 갔을 리는 분명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거기에서 침묵을 만날 수 없다. 거대한 도시의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내부의 소음을 시골로 가지고 갈 뿐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 리모콘을 쉴새 없이 누르는 동작과 컴퓨터의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을 통해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이제는 TV와 Internet의 잡음이 현실이 되어버린다. 자신의 눈 앞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직접 보더라도 믿지 못하고 그 일이 TV와 Internet을 통해서 비춰질 때만이 비로소 그 일은 하나의 실제적 사건이 되고 사실로 통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에 <침묵의 세계 Die Welt des Schweigens>는 조용히 투쟁한다. 사라져 가는 진리, 사랑, 믿음과 같은 원현상(原現像)을 침묵을 통해 되살릴 수 있다고...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침묵을 행하기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어렵다고 잊어버리기에는 너무나 가치 있는 것이기에 더 이상 이렇게 생활할 수는 없다. 우선 자연으로 가자. 나무가 가득한 곳이 아니라도 좋다. 자연이 숨쉬는 곳이면 어디든지 좋다. 그곳에서 책 한 권을 통해서 한 인간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갖자. 그리고 머리와 몸과 마음을 열어놓고 사색하자.

융은 “두 개성의 만남은 두 화학물질의 결합과 같다. 반응이 이루어지면, 둘은 변화한다.” 고 말했다. 이제 자연과 책을 만난 당신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은 문명의 질서를 정신없이 쫓아가기보다는 자연의 질서와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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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폴리 - 기술에 정복당한 오늘의 문화, 21세기문화총서 6
닐 포스트먼 지음, 김균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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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신문 봤다면 분명 이렇게 시작하는 말이 꼭 있었을 것이다. 〈00대학 연구결과 입증된 사실은〉, 〈현재 과학자들이 말하는 것에 따르면〉. 그래서 이렇게 말을 시작하는 경우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반박을 당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을 닐 포스트먼Neil Postman 은 테크노폴리 Technopoly―모든 형태의 문화와 생활이 기교와 기술의 치하에 종속되는 것―로 바라보고 있다.

닐 포스트먼은 매체 생태학자이자 뉴욕대 문화/커뮤니케이션 학부의 책임자이며 사범대 교수이다. 초·중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교육문제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주로 미디어와 교육의 관계에 대해 연구해오고 있다. 『교육의 종말』, 『죽도록 즐기기』, 『사라지는 아이들』등 20여 권에 이르는 저서를 통하여 대중매체와 기술에 의해 전개되고 있는 현대 미디어 문화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통찰을 제시하였고 현재 미국에서 손꼽히는 문명비평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에서는 문화를 도구사용문화, 기술주의문화, 테크노폴리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기술이 무한한 진보와 책임 없는 권리, 그리고 대가없는 기술이라는 기치를 높이 들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테크노폴리는 도덕적, 사회적, 지적 구심점이 없다. 대신 그 자리에 효율성, 흥미. 그리고 경제발전을 채워 넣는다. 이곳에서는 기술이 더 낳은 삶과 고민 없는 평온한 마음, 행복한 인생을 약속한다. 그러나 아무도 기술이 놓여야 할 올바른 위치를 말하는 사람이 없고 기술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우리가 누구이고,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의미는 사라지고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만 클릭하는 모습이 남게될 것이다.

마셜 맥루한 Mashal Mcsuhan 은 『나는 누가 물을 발견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결코 물고기는 아니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뭔가 깊이 빠져 있으면 그 사실을 알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이 책은 지금 우리가 무엇에 빠져 있는가를 가르쳐 주고 깊이 빠져 있는 곳에서 나와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 방향과 방법을 제시해준다. 닐 포스트먼은 테크노폴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인간성의 상승'으로 하는 교육을 제안한다. 또한 역사, 과학철학, 의미론, 예술의 형식사, 비교종교학 등을 교과과정으로 제시함으로써 사회과학의 특징인 추상적이고 당연한 결론에서 벗어난다.

물론 여러 학자들이 많은 방법론을 제시한다. 존 나이스비트 John Naisbitt도 그 중의 한 사람으로 볼 수 있는데, 그는 『하이테크 하이터치 HIGH TECH HIGH TOUCH』에서 해맑은 아이의 미소, 어르신을 보면 자리를 내어주는 따뜻한 마음, 가난한 이웃들에게 베푸는 사랑의 손길과 같이 작고 사소한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하이터치와 진보의 기술문명인 하이테크와의 조화를 강조했다. 사람과의 접촉과 교감을 통해 이뤄지는 감성과 사랑의 힘은 단순히 기계적인 합리성과 속도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 하이터치의 핵심이다.

그러나 테크노폴리는 하이터치마저 장미 빛 기술로 가려버리고 평범화시켜 그 가치를 없앤다. 여기에서 닐 포스트먼이 주장하는 교육이 가지는 초월적인 기원과 힘을 지닌 상징과 서사가 더욱더 필요하게 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하는 것도 여기에 있다. 기술로는 십 년 앞을 살펴보는 것조차 힘들다. 그리고 기술에는 정신이 담겨 있지 않다. 인간은 정신을 먹고살며 그 정신은 교육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지금 한창 논쟁이 되고 있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을 보더라도 교육이 가지는 그 가치와 힘은 더 이상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 책의 가치는 여기에서 더욱 빛이 발한다.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테크노폴리를 이야기하면서 제시되는 여러 편의 좋은 책들은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된다.

테크노폴리를 읽고 나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최고의 사양을 자랑하는 화려한 컴퓨터가 아니라 소박한 한 권의 좋은 책과 그에 뒤따르는 진지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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