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폴리 - 기술에 정복당한 오늘의 문화, 21세기문화총서 6
닐 포스트먼 지음, 김균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오늘 아침 신문 봤다면 분명 이렇게 시작하는 말이 꼭 있었을 것이다. 〈00대학 연구결과 입증된 사실은〉, 〈현재 과학자들이 말하는 것에 따르면〉. 그래서 이렇게 말을 시작하는 경우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반박을 당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을 닐 포스트먼Neil Postman 은 테크노폴리 Technopoly―모든 형태의 문화와 생활이 기교와 기술의 치하에 종속되는 것―로 바라보고 있다.

닐 포스트먼은 매체 생태학자이자 뉴욕대 문화/커뮤니케이션 학부의 책임자이며 사범대 교수이다. 초·중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교육문제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주로 미디어와 교육의 관계에 대해 연구해오고 있다. 『교육의 종말』, 『죽도록 즐기기』, 『사라지는 아이들』등 20여 권에 이르는 저서를 통하여 대중매체와 기술에 의해 전개되고 있는 현대 미디어 문화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통찰을 제시하였고 현재 미국에서 손꼽히는 문명비평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에서는 문화를 도구사용문화, 기술주의문화, 테크노폴리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기술이 무한한 진보와 책임 없는 권리, 그리고 대가없는 기술이라는 기치를 높이 들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테크노폴리는 도덕적, 사회적, 지적 구심점이 없다. 대신 그 자리에 효율성, 흥미. 그리고 경제발전을 채워 넣는다. 이곳에서는 기술이 더 낳은 삶과 고민 없는 평온한 마음, 행복한 인생을 약속한다. 그러나 아무도 기술이 놓여야 할 올바른 위치를 말하는 사람이 없고 기술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우리가 누구이고,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의미는 사라지고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만 클릭하는 모습이 남게될 것이다.

마셜 맥루한 Mashal Mcsuhan 은 『나는 누가 물을 발견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결코 물고기는 아니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뭔가 깊이 빠져 있으면 그 사실을 알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이 책은 지금 우리가 무엇에 빠져 있는가를 가르쳐 주고 깊이 빠져 있는 곳에서 나와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 방향과 방법을 제시해준다. 닐 포스트먼은 테크노폴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인간성의 상승'으로 하는 교육을 제안한다. 또한 역사, 과학철학, 의미론, 예술의 형식사, 비교종교학 등을 교과과정으로 제시함으로써 사회과학의 특징인 추상적이고 당연한 결론에서 벗어난다.

물론 여러 학자들이 많은 방법론을 제시한다. 존 나이스비트 John Naisbitt도 그 중의 한 사람으로 볼 수 있는데, 그는 『하이테크 하이터치 HIGH TECH HIGH TOUCH』에서 해맑은 아이의 미소, 어르신을 보면 자리를 내어주는 따뜻한 마음, 가난한 이웃들에게 베푸는 사랑의 손길과 같이 작고 사소한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하이터치와 진보의 기술문명인 하이테크와의 조화를 강조했다. 사람과의 접촉과 교감을 통해 이뤄지는 감성과 사랑의 힘은 단순히 기계적인 합리성과 속도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 하이터치의 핵심이다.

그러나 테크노폴리는 하이터치마저 장미 빛 기술로 가려버리고 평범화시켜 그 가치를 없앤다. 여기에서 닐 포스트먼이 주장하는 교육이 가지는 초월적인 기원과 힘을 지닌 상징과 서사가 더욱더 필요하게 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하는 것도 여기에 있다. 기술로는 십 년 앞을 살펴보는 것조차 힘들다. 그리고 기술에는 정신이 담겨 있지 않다. 인간은 정신을 먹고살며 그 정신은 교육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지금 한창 논쟁이 되고 있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을 보더라도 교육이 가지는 그 가치와 힘은 더 이상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 책의 가치는 여기에서 더욱 빛이 발한다.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테크노폴리를 이야기하면서 제시되는 여러 편의 좋은 책들은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된다.

테크노폴리를 읽고 나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최고의 사양을 자랑하는 화려한 컴퓨터가 아니라 소박한 한 권의 좋은 책과 그에 뒤따르는 진지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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