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받는 기분 문학과지성 시인선 552
백은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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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거의 죽은 날> 중

경주용 말이었다
오로지 달리기 위해 엄격한 계보 아래
만들어진 생명이었다

고장 난 태엽 시계를 창틀에 올려뒀어

우연히 정확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조소에 가까운 예감 - P125

<픽션 다이어리> 중
나는 NPC인데 이 게임에서 내 역할은 같은 자리에 서서 영원히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보르헤스가 생각한 픽션이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소설이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의 무엇이었다. 가상 세계와 현실 사이의 비좁은 틈 같은.

게임을 만들려면 먼저 코딩 교육부터 받아야 될 텐데 엄마는 코딩이 싫어. 이해할 수 없는 기호들 속으로 숨는 뒷모습이 되기 싫어.

역시 인간은 재미있어. - P166

<비천의 형식> 중

p.179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일에 왜 이렇게 환장할까 생각하다 나도 그렇다는 사실에 조금 슬퍼졌다 그렇지,

묻고 싶었다
물을 수 없어서

책을 읽었어 크고 무거운 것이 마음을 꾹 짓누르는 내 성분은 분노뿐인 것 같고

p.181 검은 새들은 자신의 색을 알지 못한 채
검정에 가까워질 수 있다

p.183 고통을 그럴싸하게 전시할 방법에 몰두하며

새벽 고속도로를 달릴 때 최대 볼륨으로 음악을 들으며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있나 점멸하는 빛과 끝없이 뻗은 텅 빈 도로 떠오르는 도로 허공 찢기는 허공 이것을 시로 쓸 수 있나 생각했고 속력은 참 아름답다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렇지 않니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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