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비쿠스 1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원작, 파스칼 라바테 그림, 이재형 옮김 / 현실문화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20세기 초 혼돈과 혁명의 러시아를 배경으로 지극히 평범한 회계원인 시메온의 인생사가 펼쳐진다. 1910년대의 러시아의 사회상이 지금의 우리들에겐 낯설지만 그건 중요치 않은 것 같다. 시메온이라는 인간상은 그가 살았던 시대가 19세기이든 훨씬 앞선 어느 옛날이든가에 관계없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원초적인 내면의 모습인 듯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서평이나 옮긴이의 짧은 글을 읽다보면 시메온을 ‘말하는 해골’ 즉 이비쿠스와 같은 악의적이고 타락한 인간으로 동일시한다. 그렇지만 나는 시메온의 모습 곳곳에서 나 자신의 숨기고 싶은 치부를 보는 듯 했다. 시메온은 그가 속한 세계에서 뭐하나 내세울 것 없는 그야말로 보잘것없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 또한 막연한 일확천금을 꿈꾸기도 하지만 그걸 이룰 특별한 길이 있으리란 생각이나 노력같은 건 애당초 하지 않는다.

단지 믿는 건 어느날 손금을 봐준 짚시 여인의 부자가 될 거라는 말뿐이다. 그건 그에 대한 어떤 확신이나 믿음이 아니라 오히려 잡히지 않을 신기루에 대한 부질없는 기대에 가깝다. 그럼에도 놓아버릴 수 없는 쓸데없는 기대는 그 자체만으로도 자칫 희망없는 삶의 유일한 희망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실망과 기대를 동시에 느끼며 여전히 복권판매대에 긴 줄을 선다.

우리와 시메온이 다른 것은 단지 시메온에게 기회가 우연히 왔다는 것 뿐이다. 물론 그 기회 앞에서도 선택의 갈림길이 있었지만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양심을 택하겠는가? 그리고 우연챦은 기회 앞에서 양심을 저버렸다고 해서 과연 그에게 우리는 떳떳하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시메온은 그 갈림길들에서 많은 부분 양심을 저버리는 선택을 한다. 그럼에도 그런 그에게 난 동정심을 느낀다. 그의 뒷모습은 여느 소시민의 그것들과 아직도 너무도 흡사하다.

세상에 대해 떳떳할 수 없이 주눅들고, 혼돈과 공포앞에서 맞서기보다는 제 몸 하나 숨을 자리를 비굴하게 둘러보는 나약한 그의 너무나도 작고 초라한 뒷모습에서 ….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를 느끼게 된다. 내게도 그와 같은 기회와 갈림길이 찾아온다면 나 역시 또 하나의 이비쿠스가 되지 않으리란 법도 없을 것 같다. 우리 안의 이비쿠스는 단지 제 모습을 드러낼 기회를 만나지 못해서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