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 가는 길 황석영 중단편전집 2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10월
평점 :
품절



<삼포 가는 길>을 읽으면서 하얀 눈밭을 서로 의지하며 걸어가는 세 명이 그려졌다. 두 명의 남자, 정씨와 영달, 한 명의 여자, 백화가 말이다. 그들은 처음 만났지만 서로에게 관심을 느끼고 마치 옛 친구인 것처럼 대하며 서로를 챙긴다. 아마도 그들 모두가 힘들게 살아온 인생이란 것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달은 부랑하면서 이곳저곳 일을 찾아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여자와 동거도 하지만 떠돌이의 삶에서 여자와의 언약을 지키기는 힘들었다. 정씨는 ‘큰집’, 감옥에서 목공 ․ 용접 ․ 구두 수선 등 여러 기술을 배워 가지고 있지만 어디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고향 삼포를 찾아 길을 떠나다가 영달과 백화를 만난다. 백화 또한 인생이 순탄하지 못하였다. ‘열여덟에 가출해서, 쓰리게 당한 일이 많기 때문에 삼십이 훨씬 넘은 여자처럼 조로해 있는’ 그녀는 창녀로 사는 것에 이미 익숙해져 버려 몸을 도구로 삼아 살아간다. 영달과 정씨는 식당 주인이 준다는 만 원도 마다하고 백화를 오히려 도와주며 여비도 나누어준다. 백화는 그런 영달에게 감동하고 자신의 본명, 아무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는 다는 ‘이점례’라는 이름을 가르쳐 준다. 아마도 그녀는 그 이름을 순수하게 간직해왔을 것이다. ‘백화’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본래 순수함을 간직한 그 본명을 보물처럼 감쳐두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영달에게 그런 본명을 가르쳐 준 것은 다른 남자들과 달리 자신을 작부로 대하지 않고 따뜻하고 순수하게 대해 주었기 때문이리라. 이 세 명의 주인공은 모두다 사회의 중심인물이 아닌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다. 소설은 이들이 모여 삼포로, 정확히 말하면 감천 읍내 역에 이르기까지의 짧지만 길지도 모를 동행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정씨에게는 큰 혼란이 찾아온다. 노인에게서 들은 삼포의 소식으로 인해 정씨는 꿈에 그리던 고향의 모습을 상실한 것이다. ‘고기잡이나 하고 감자나 매던’ 삼포가 관광호텔이 들어서고 공사판이 되어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당시 사회상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이 쓰인 1970년대는 근대화로 인한 경제 발전이 한창이던 시기이다. 물론 경제가 발전하고 소득이 증대되는 등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농어촌이 해체되고 그로 인해 농어민이 고향을 상실하고 노동자로 변하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 삼포가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관광지로 변해 가는 모습을 통해 농어촌의 해체 과정을 그리며, 또한 유랑만 거듭하는 백화, 정씨, 영달 세 사람을 통해 농어민의 고향 상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노인이 “사람이 많아지면 하늘을 잊는 법이거든.”하는 말에는 산업화로 인해 초래되었던 부정적인 단면을 지적하는 작가의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결국 정씨는 산업화된 삼포를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곳으로 여기는 영달처럼 마음속의 고향마저 상실하고 부랑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물론 이 소설을 이처럼 당시의 사회상과 연결하여 이해하는 데에 큰 무리가 없다. 또한 고등학교 때도 이 소설을 이런 식으로 배웠다. 하지만 꼭 사회상과 연결하지 않더라도 이 소설은 ‘인생’을 그리고 있다는 데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대사는 정씨가 “감옥뿐 아니라, 세상이란 게 따지면 고해 아닌가……”라고 한 것이다. 세 사람의 인생은 정말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고 이렇다 할 기쁨을 느껴보지 못했다. 부랑노동자로, 창녀로,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이들의 인생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힘든 인생을 산 사람만이 인생을 ‘고해’라고 느끼는 것은 아니다. 많은 돈과 높은 명예를 다 가진 사람이라도 인생이 즐거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삶에 있어서 즐거운 날보다 힘들고 고된 나날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잠시의 행복을 맛보기 위해 우리는 ‘고해’같은 세상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 잠시의 행복이 우리네 인생에 큰 기쁨을 주기 때문에 힘들더라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세상을 단순히 즐겁고 낭만적인 것으로 그리는 것은 어쩌면 삶을 아름답게 포장함으로써 독자를 기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보다는 이 소설에서처럼 진정한 인간의 삶이란 힘들고 괴롭게 살아가지만 살다보면 같이 이겨내는 타인에게 동질감도 느끼며 서로 인정을 베풀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그리는 것이 더 진실하게 다가온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가 아니라 속세에 더러워지고 찌든, 삶에서의 괴로움을 보여주는 소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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