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은 순수한 듯 성숙한 듯한 시선처리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어른의 시선으로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글이지만 나는 작품을 읽으면서 어린 아이의 입장에서 그 시절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잡지 <과학동아>, 고무동력기 날리기 대회, 투게더 아이스크림….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나에게 무척 익숙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가 나의 어린 시절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전(前)일 것이라는 추측을 해보았다. 궁금해서 소설 속에 나오는 핼리혜성의 이야기를 근거로 조사를 해 본 결과, 핼리혜성이 최근에 나타난 해가 1985년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1980년대에 유년을 살아간 화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소설 속에는 그 시대의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많은 소재들이 등장해서 이야기를 풍부하게 해 준다. ‘스카이 콩콩’도 그 시절 아이들이 좋아하던 장난감이다. 물론 내가 어렸을 적에도 스카이 콩콩을 타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더 정감이 가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 소설은 한 아이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스카이 콩콩을 타던 어린 화자의 성장 뿐 아니라 라디오를 고치지 못하다가 라디오를 고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상징되는 형의 성장이기도 하다.  아버지께서 눈이 안 보인다고 하니 티비를 치우자 안경을 벗고 눈이 보인다고 하던 순수한 어린아이에서 어느새 대학 시험을 보고 집을 나갔다 태연히 돌아와 있는 형으로 컸다. 형이 즐겨 보던 <과학동아> 잡지의 두께만큼 형은 커버린 것이다. ‘나’ 또한 자신이 타던 스카이 콩콩은 그렇게 멋진 것이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경박하고 우스워 보이는 스카이 콩콩 타기는 그가 말한 것처럼 ‘살면서 누구나 내는 소음’처럼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실수도 하고 바보 같은 짓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스카이 콩콩 타기와 같다. 가로등이 보내온 윙크처럼 그것으로 인해 얻는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장했다고 해서 번듯해지고 아주 위대한 성인이 된 것은 아니다. 어린 아이에서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성공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못 고치던 라디오를 고칠 수 있는 형과, 형이 갖고 있는 세계의 두께를 느끼게 된 동생처럼 우리는 사소하나마 하나씩 알아가며 살아가고 있다. ‘지구와 가로등의 너비 차가 만드는 사이’ 안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간다. 형, 아버지, ‘나’ 같은 사람들. 즉, 소설 속에서 볼 수 있는 형과 동생의 성장은 우리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별반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그들은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큰 사건 없이 사소한 일들로 이루어진 이 소설이 갖는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형과 동생의 사소한 과정을 통한 성장을 보면서 우리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겪은 많은 성장과정을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작품은 극단적인 사건 없이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독자의 공감을 일으킴으로 인해 편안하고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들과 이야기를 통해 내 유년시절을 추억해보기도 하고, 주인공의 심리에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러나 쉽게 읽힌 내용 안에는 그보다 큰 의미가 들어있었다. <스카이콩콩>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쉬운’ 소설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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