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었다 녹았다 눈보라 친다

흔들리는 명태들이 덕장에서 부풀어 오르기를 거듭하며

마른 빨래처럼 부드러워진다


- 박남준, <황태와 나>(1~3행), 시집 《중독자》, 펄북스, 2015


청춘이었을 때는 몸이 마음보다 빨랐다.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보면 이미 한참 행동하고 있었다. 내 발은 길과 닮은 점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살펴보면 길 위에 있곤 했다. 어쩌면 그걸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주 길 위에 있었고, 길 위에서는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자유로운 것은 몸이 놓인 위치가 아니다. 아무리 몸을 자유롭게 부려도 몸 스스로 자유를 누리지 못할 때도 많다. 근래 몇 년 동안 자주 '쉬고 싶다'고 반복적으로 되뇌었지만 정작 시간이 주어졌을 때 몸은 제대로 쉴 줄 몰랐다. 


한 달쯤 시골에 있었다. 어느 날, 담장 아래 앉아 봄 햇볕을 쬐었다. 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았다. 그저 볕이 하도 좋아 나를 말리고 싶었다. 젖은 내부를 꺼내 가만히 널어놓으면 뽀송뽀송하게 마를 것만 같았다. 그러면 그동안 나를 무겁게 하였던 습기들이 다 걷어질 것 같았다. 


나를 무겁게 하는 것들이 무엇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별 것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참 무겁고 답답하고 눅눅했던 게 분명하다. 그걸 잊자고 한 건 아니었다. 잠시나마 홀가분할 것 같아서 그랬다. 


산다는 게 궂은 날과 맑은 날의 반복이다. 가급적 맑은 날이 많으면 좋은 게 당연지사. 그러나 사람일이라는 게 그리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궂은 날, 맑은 날이 교대로 와 주면 그나마 낫다. 아예 작심하고 궂은 날만 주야장천 이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숨 쉴 틈은 있기 마련.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부풀어 오르며 숨구멍이 열린다. 부드러워진다. 삶의 이치다. 


지금도 햇볕 좋은 담장 아래 앉아 나를 말리고 싶다. 나도 "마른 빨래처럼 부드러워"진 몸과 마음을 갖고 싶다. "햇볕이 어디 꼭 바깥에만 있겠는가" 그리 말한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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