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기 시인의 시집 <내가 내 몸의 주인이 아니었을 때>를 읽는다.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양해기 시인은 남들이 눈여겨 보지 않는 것들을 본다.
그냥 보지 않고 눈여겨 본다.
그러고는 눈여겨 보지 않던 것들을 화들짝 눈여겨 다시 보게 하는 것들로 바꿔 놓는다.
심지어 그림자와 사물의 뒷편까지도 본다.
개의 눈, 죽은 참새에게서 전생이 사람이었던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가 보는 사물과 현상은 하나하나가 명확하게 분리된 것이 아니다.
한 몸이 되었거나 변형되었거나 몸 바꿔 앉은 것들이다.
시집 곳곳에서 죽음이 수시로 출몰한다.
생명은 이미 죽음을 품고 있고, 죽음은 저 홀로 따로 있지 않다.
양해기 시에서 생명과 죽음은 함께이거나 하나이다.
그는 불완전한 존재에 대한 시선을 놓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서 수많은 과거와 전생과 다른 생명을 본다.
전혀 이질적인 것에서 본질을 통찰해낸다.
그래서 시에 담긴 대상이 더 안타깝고, 더 슬프다.
그러한 것들을 보는 시인의 눈은 연민과 안타까움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시로 나온 대상은 담담하게 묘사되고 언급된다.
그게 더 가슴을 쥐고 흔든다.
사전 동의를 받지는 못하였지만 양해를 구하며, 짧은 시 4편을 옮겨 놓는다.
[인형 세우기]
영은이가 인형을 가지고 논다
헝겊조각을 펴서
인형을 눕힌다
서 있을 때
눈뜨고
눕히면 눈을 감는다
일찍 돌아가신 엄마 대신
영은이는
오늘도 인형과 함께 놀고 있다
불안한 영은이는
자주 인형을 일으켜 세워본다
인형이
오래 눈감고 있지 못하게 한다
(54p)
[아기 관]
성남 화장터
병원 구급차가 도착했다
작고 조그만 관이 옮겨지고
화장터 뒤편에서
유난히 하얀
연기가 뒤섞여 나온다
연기는
이제까지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관 속 아이의 얼굴을
허공에 그려두고 있었다
(53p)
[낡은 운동화]
신발 한 짝이
흙바닭에 버려져 있다
뒤집히면서도
신발은
어딘가를 향해 있었다
(21p)
[벌레]
어디론가 바삐바삐 가고 있는
저 작은 벌레도
오늘 나처럼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모양이구나
(4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