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한정식 선생의 사진 <전남 영암 도갑사>(1986)는 빈방 가운데 작은 탁자 하나가 놓여 있고, 천정 가운데 백열등 알전구 하나가 매달려 있다. 그 방의 전부이다. 

지금까지 보아온 많은 사진 가운데 이만큼 깊은 인상을 준 사진은 드물다. 한 장의 사진에 무성한 얘기를 담을 수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아니, 수도 없이 많은 말들을 한꺼번에 다 지워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게 맞겠다.


한정식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참으로 신비하다. 겉 속에 속이 들어있고, 보이지 않는데 보이는 것이 있다. 보인다고 보이는 것이 아니요, 안 보인다고 안 보이는 것이 또 아니다.

사진이 그렇다. 사진은 겉모습 속에 속이 들어있고, 보이지 않는데 보이는 것이 있으며, 보인다고 그것을 다 보이려는 것이 아니요, 안 보인다고 없는 것이 또한 아니다." (사진산책, 눈빛, 2007, 93~94쪽)



나는 많은 것을 채우면서 살아왔다. 지금도 여전히 채우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채워갈 것 같다. 작은 집, 작은 방에는 여러 가지 물건으로  자꾸자꾸 채워진다. 지금은 쓸모가 있다 하더라도 과연 언제까지 쓸모 있을지는 모른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부터는 비움이 더 많이 차지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도의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는 이렇게 말했다.

"한 번이라도 좋다. 완전하게 빈집에 들어가 본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빔'은 그냥 빈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현존'이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잠깐이라도 빈집에 살아 본 적이 없다. 어쩌면 생을 다할 때까지 빈집에 살아볼 일은 없을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나는 빈집을 추구할 것이다. 무늬를 만드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만들었던 무늬를 잘 지워가는 것도 필요하다. 무문(無紋)의 삶을 살아 가는 것.


나는 폐사지를 좋아한다. 중동이 부러진 한두 기의 석탑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거나 석불은 어디가고 좌대만 남아 바람과 햇볕과 소리의 불상을 옮겨 앉히는 풍경은 마음으로 봐야 한다. 쇠락해진 모습이 무소유와 비움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남기고 싶은 것도 폐사지의 옛 번성을 더듬어볼 수 있는 단초 몇 개와 같은 것들인지도 모른다. 그것마저도 빈집에 대한 욕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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