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게도 나는 오랫동안 내 인생의 한 권의 책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져왔다. 나를 기다리는 책, 내가 그 책을 향하여 긴 시간을 걸어왔을 것 같은 책이 분명 있으리라는 생각을 품어 왔다.

그러나 그러한 책은 없다. 단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꿨다는 얘기는 간혹 들었지만, 곧이곧대로 믿을 말은 아니다. 모색과 탐독 과정에서 임펙트 강한 책은 있을 것이다. 전환의 계기가 된 책, 새로운 싹을 틔운 촉매로서의 책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을 통째로 바꾸는 한 권의 책을 만나는 경험은 드물 것이다.


아까운 책 2013(부키, 2013)을 받아들면서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책 가운데 나를 기다리는, 내가 기다려온 한 권의 책은 없는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해보았다. 결국에는 내가 읽은 모든 책이 합해져서 한 권의 책을 이루게 될 것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어쩌면 아닌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는 미련한 짓과 나를 붙들고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 미련이 나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책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아까운 책 2013》에 수록된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라는 부제가 붙은 다시, 그림이다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오랫동안 바라보기, 그리고 열심히 바라보기

예술과 관련짓지 않더라도 관찰과 관조는 대상의 핵심을 명징하게 이해하는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책을 통하여 인문과 사회, 예술과 문화, 인간과 과학을 오랫동안, 그리고 열심히 바라보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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