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진 산문전집 『산거일기』(문학동네)를 읽다가 밑줄 그어놓은 것들 가운데 일부를 적어본다.
“나는 오늘 그리도 애지중지하던 머리를 깎아버렸다. 구렁이같이 흉스러운 내 자신의 집착성에 대한 증오의 반발이었다. 그리고 장삼을 입고 합장해보았다. 외양의 단정은 내심의 정제에 결코 적지 않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겸손과 하심(下心) - 얼마나 평안하고 화평한 심경인가?” (15쪽)
“절간은 방 따뜻한 맛으로 산다는 말과 같이 아닌게 아니라 따끈한 방안에 앉아 고요히 타는 램프를 바라보며 빈 골을 울리는 바람소리를 듣는 것은 여간 아취로운 풍정이 아니다.” (20쪽)
“그러나 이 여성멸시의 사상은 불교 본래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주로 그 당시의 특수한 사회조직의 영향으로, 남성중심 사상의 반영에 불과한 것일 것이다.” (24쪽)
“모든 인간고의 근거는 무어라 하여도 ‘식(食)’과 ‘성(性)’이다. 먹을 것이 결핍한 곳에 불안이 있고, 성의 만족을 얻지 못하는 곳에 우울이 있다. 이 불안, 이 우울을 일소하지 못할 때 백의 교화, 천의 전도가 사실 무슨 효과를 가져올 것인가?” (29쪽)
“어디서나 무슨 소식이 있을 듯하여 종일 기다렸으나 편지 한 장 오지 않았다.
저녁 후에 과연 한 줄기 소나기가 왔다.” (86쪽)
“오후에 어제 하다 둔 도벽(塗壁)을 마치다.
세상일이란 더러워진 벽인가?
닦을 줄 모르고 덮기만 한다.” (1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