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의 커피

                                            - 이해인

 어느 날 혼자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허무해지고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가슴이 터질 것만 같고 눈물이 쏟아지는데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데 만날 사람이 없다.

주위에는 항상 친구들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날 이런 마음을 들어줄 사람을 생각하니

수첩에 적힌 이름과 전화전호를 읽어내려가 보아도

모두가 아니었다.

혼자 바람맞고 사는 세상 

거리를 걷다 가슴을 삭이고 마시는 뜨거운 한 잔의 커피

아! 삶이란 때론 이렇게 외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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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우체국

                               -안도현-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키 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였다
우체국이 한 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처럼 보였으나
나는 곧 그 게으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 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었다
나는 세월에 대하여 말하지만 결코
세월을 큰 소리로 탓하지는 않으리라
한 번은 엽서를 부치러 우체국에 갔다가
줄지어 소풍 가는 유치원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내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우체통이 빨갛게 달아오른 능금 같다고 생각하거나
편지를 받아먹는 도깨비라고
생각하는 소년이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소년의 코밑에 수염이 거뭇거뭇 돋을 때쯤이면
우체통에 대한 상상은 끝나리라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슴속 주머니에 넣어 두는 날도 있을 것이며
오지 않는 편지를 혼자 기다리는 날이 많아질 뿐
사랑은 열망의 반대쪽에 있는 그림자 같은 것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삶이 때로 까닭도 없이 서러워진다
우체국에서 편지 한 장 써보지 않고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 길에서 만난다면
나는 편지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질 것이다
바다가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쓸쓸해지는 저물녘
퇴근을 서두르는 늙은 우체국장이 못마땅해할지라도
나는 바닷가 우체국에서
만년필로 잉크 냄새 나는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쓰는
소년이 되고 싶어진다
나는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사랑을 한 게 아니었다고
나는 사랑을 하기 위해 살았다고
그리하여 한 모금의 따뜻한 국물 같은 시를 그리워하였고
한 여자보다 한 여자와의 연애를 그리워하였고
그리고 맑고 차가운 술을 그리워하였다고
밤의 염전에서 소금 같은 별들이 쏟아지면
바닷가 우체국이 보이는 여관방 창문에서 나는
느리게 느리게 굴러가다가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아는
우체부의 자전거를 생각하고
이 세상의 모든 길이
우체국을 향해 모였다가
다시 갈래갈래 흩어져 산골짜기로도 가는 것을 생각하고
길은 해변의 벼랑 끝에서 끊기는 게 아니라
훌쩍 먼바다를 건너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 외로울 때는
파도 소리를 우표 속에 그려넣거나
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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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아프단다 

                               - 유안진-

나는 늘 사람이 아팠다
나는 늘 세상이 아팠다
아프고 아파서
X-ray, MRI, 내시경 등등으로
정밀진단을 받았더니
내 안에서도 내 밖에서도 내게는,
나 하나가 너무 크단다,
나 하나가 너무 무겁단다

나는 늘,
내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잘못 아프고 잘못 앓는단다

나말고 나만큼 나를 피멍들게 한 누가 없단다
나말고 나만큼 나를 대적한 누가 없단다
나말고 나만큼 나를 사랑한 누가 없단다
나말고 나만큼 나를 망쳐준 누가 없단다
나말고 나만큼 내 세상을 배반한 누가 없단다

나는 늘 나 때문에 내가 가장 아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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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1
제인 오스틴 지음 / 현대문화센터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한 오년전 친구들과 책읽기 모임을 통해 읽었던 책 중 하나다..  약간 하이틴 로맨스같은 분위기는 있으나 등장하는 케릭터들의 살아있는 묘사와 함께 주인공들의 섬세한 감정변화 및 심리묘사가 썩 맘에 들었던 책이었다.

드디어 이 책을 모 호텔에서 주관하는 시사회를 통해 보게 되었다.. 예전 잊고 있던 기억을 넘실넘실 건드리며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오만과 편견을 잘 드러내준다. 역시 영화란 너무 쉽게 다 드러낸다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예의바른 영국식 발음과 새소리 만연한 시골들판 풍경은 영화만이 보여줄수 있는 장점이리라..

간간히 보이는 코믹한 장면과 잘 짜여진 내용으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보았다.. 가끔 이런 단순하고 착한 내용도 위로가 된다.. 특히 영국식 저택과 확트인 벌판배경은 조잘조잘 새소리와 함께 마치 영국 여행다녀온 느낌같이 즐겁게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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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진작 사고도 빈둥거리다가 뒤늦게 읽었다. 그것도 놀다지쳐 머 재미나는거 없을까하던 차에 우연히 눈에 띠어 생각없이 읽게 된 책이다.그동안 공지영 소설에 대해 왠지 너무 철없는 공주같다는 나만의 편협한 생각때문에 책을 솔직히 조금 멀리 했던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책을 잡자마자 그 특유의 흡입력에 화~악 빨려 들어가면서 첫장부터 눈시울을 붉히며 결국 두루마리 휴지를 끼고 내내 코풀며 눈물 펑펑 흘리고만, 결국 한번에 끝까지 다 읽어버리고 만 몇 안되는 원샷(?) 책이다. 특히 사형수 정윤수의 블루노트 부분은 너무나 가슴시리도록 아픈것으로 모자라 나중에는 맘까지 불편해 지면서 그 부분을 빼고 읽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와 읽었다..) 그의 불우한 어린시절, 눈먼 동생이야기, 결국 동생의 죽음과 살인누명이야기는 한페이지 한페이지 나올때마다 왜이리 가슴이 시리도록 아픈지.. 간만에 험한 내용 제대로 접한것 같아 맘이 실로 매우 불편했다..

눈물콧물 범벅된채 책을 덮고나서 과연 사형제도가 정말 필요한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막연히 인간생명에 대한 존중으로 반대입장을 취했었는데 이젠 그 막연히가 아니라 좀더 구체적인 사유로 반대해야하지 않나 싶다. 어차피 우리모두 고만고만한 인간이라는거, 선한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순간순간 행복할때와 불행할때가 모두 있기 때문에 작가의 옛 소설 제목처럼 "인간에 대한 예의"로  사형제도를 보아야하지 안나라는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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