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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물리학
림태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5월
평점 :
1.
연이어 웅진지식하우스의 에세이를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림태주의 <관계의 물리학>입니다. 조금 특이한 점은 '시인'이 얼마간 '과학'을 소재로 쓴 '에세이'라는 점입니다. 어딘가 위화감이 들지도 모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조합이 되어 있거든요. 과학은 과학자의 것이고, 시인은 시를 쓴다는 생각이 관성처럼 들게 마련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의 내용은 상당히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편입니다. 독자들에게 잃고 있던 감정들을 생생하게 살려낼 수 있는 책이고 그것은 저자가 시인이라는 점에서 동력을 얻는 것 같아요. 문장들이 시종 동글동글하고 명랑한 구석이 있어서 산뜻하게 읽어나가게 되는 편입니다. 특히, 열역학 제2법칙을 거론한다던가, 우주나 질량에 관한 얘기를 하면서도 그 문장력을 잃지 않고 있어서 첫째로는 생경한 주제가 주는 신선함이 있고, 둘째로는 역시 아름다운 문체가 주는 특별한 매력이 있는 책이에요.
2.
본문에서 몇몇 문장을 아예 소개해드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서문에 저자는 본인을 '글의 그물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은유 몇 낱을 여기 붙잡아…' 라는 등의 아름다운 문장을 통해, 딱히 저자 소개를 듣지 않고도 이미 저자가 시인이라는 점은 쉽게 유추할 수 있었어요.
“ 봄은 월급통장의 잔고보다 빠르다고
쥐꼬리만한 봄을 아쉬워하며
우리는 벚꽃 그늘을 걸었다.
그 길은 짧아서 그리움을 늘이며 걸었다….“
아름답죠. 그러니까 쥐꼬리마한 건 봄뿐만 아니라 월급이기도 한 것인데, 그리움을 늘이며 그 그늘을 걸었다는 겁니다. 처연한 현실을 서술하는데도 문장이 아름다워 그 그늘을 따뜻하게 위무해주는 문장들이 가득해요. 외에도 '옷가지들이 트렁크를 열면 숨죽이고 있다가, 처음 개켜놓은 모양 그대로 나를 쳐다본다.' 같은 식의 귀여운 서술도 돋보이고요.
3.
사막엔 모래보다 많은 게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다.
이문재 - 사막
특히 초반부는 이처럼,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관계와 사이에 대해 서술하고 있어요. 소개드린 시를 비롯해서 '스웨터가 따뜻한 이유는 털실의 보푸라기들이 틈 사이에 온기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비유 등으로 관계와, 사이와, 틈의 소중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관계의 물리학>은 시인이 펴낸 산문집이기 때문에 얼마간 관계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혹은 관계라는 타성에 젖어가는 사람들에게, 심지어는 관계를 떼어내려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톤앤매너를 아름답게 알려줄 책입니다. 특히 타인과의 관계를 우주라던가, 물리학에 빗대 풀어내는 점이 참신하고요. 통찰력과 감성이 엿보이는 에세이임에도 유머를 잃지 않고 있기 때문에 많은 분들에게 위로와 공명으로 다가올 책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