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블라드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김현철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브람 스토커의 기념비적인 작품 이래로,
헐리우드의 수 많은 영상들까지 해서도 모자랐는지
아직도 뱀파이어물들은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다.
음침한 성에서의 박쥐 형상과 송곳니로 대표되었던 이미지는
최근 몇년 동안 전세계 젊은 여학생과 여성들을 스크린으로 끌어들인 트와일라잇 시리즈처럼
젊고 아름다운 연인의 모습으로 변하여 오히려 사랑의 대상으로의 위치까지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편으로 가장 원류의 뱀파이어 전설,
즉 루마니아의 드라큘 백작 이야기 또한 숱한 변주들 틈에서
끝없이 재해석되고 반복되어
마치 이야기 그 자체 속의 드라큘라와 같이 영원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안타깝게도 작년에 세상을 뜬,
남미 문학의 거장 카를로스 푸옌테스 또한 그의 작품집 한켠에
남미로 건너 온 드라큘의 이야기를 중편으로 남겨놓았고
이색적인 표지와 함께 번역되었다.
지적이고 실험성 짙은 소설을 써왔던 그가 남겨놓은 이야기가 너무도 궁금했다.
언제나 드라큘라 이야기의 한 축이던 에로티시즘은
주인공과 아내의 밤으로 압축되지만 드러나지 않으며,
주인공의 독백 이외에, 일상적인 모습의 묘사에 보이지 않기에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유럽이 아닌 라틴 아메리카의 직장에서 군림하는 절대 권력의 사장의 존재가
소설 전반부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며 이전과 다른 차별적 분위기를 만든다.
유럽에서 넘어오는 수수께끼의 귀족의 괴상한 요구가
주인공 가족의 일상에 얽히면서 이야기를 급속도로 진행되는데
결국 파멸로 치달을 줄 알면서도
그 과정이 과연 어떤 식으로 표현되었을지가 궁금하여 멈추지 못하고 책장을 넘긴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과 반전에 약간은 멍해진 채로,
마지막으로 던져진 질문과 그에 대한 답에 의아해 하면서,
과연 나바로가 본 것이 무엇이길래 그토록 경악하는지 생각해 보면서
갑자기 책은 툭 끝나버린다.
내용 자체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나
메시지는 많은 생각을 요한다.
나바로, 아순시온, 블라드, 그리고 수리나가 등이 선택한 인생의 한 선택점과
그것이 초래한 결과들은 그 인과를 따라잡기에 책은 너무 얇다.
단지 작가가 힌트로 남겨놓고, 원래 가지고 있는 드라큘라 전설의 배경 지식을 통해 맞추다 보면
수백년을 살아왔을 블라드가
또 몇 사람에게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을 인생의 자국을 남겨놓았음을 알게 되고,
또한 그 자국을 그들이 원하고 선택했음을 깨닫는다.
결국 영생의 뱀파이어의 모습과 굴레는
비록 필멸일지라도 반복되어 재생되는 인간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러기에 일반적인 생각처럼 먹이와 포식자로서의 관계가 아니라,
얽힌 관계와 업, 상호적인 관계가 인간과 블라드 사이에 존재하며
블라드 역시 그 업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자인지라,
자신의 테두리로 들어오든지, 아니면 영원히 연이 닿지 않도록 사라지든지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짧지만 쉽지 않았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