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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평점 :
군대에 있던 시절..
같이 지내던 미군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 중의 하나는 '빨리빨리' 였다.
군대식 문화에 속도와 효율성을 강조하는 저 단어가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었겠지만
우리 나라의 국민성 자체가 급하게 돌아가는 저 속도성을 가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 결과,
우리 나라의 근대는 불과 1세기 만에 다른 나라의 몇 세기 분의 격동적인 시간을 겪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시간의 흐름은 격변 속에, 또 다른 빠른 시간을 살아가는 현재 때문에
거의 잊혀져 가고 있다.
이 책읜 저자인 최규석은 평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만화를 그리는 작가인데,
나보다 두 살 정도 어리다.
때문에 그의 부모와 조부모의 삶과 시간은 나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고
그 시간을 공유해야 한다.
나 역시 어린 시절을 깡시골에서 보낸 적이 있었기에 아주 낯설지는 않았지만
이 책의 이야기를 다른 이들에게 해주었더니 어떻게 그것이 동시대의 이야기가 되느냐고,
일제시대 백년전 이야기가 아니냐고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렇듯, 우리는 너무도 빨리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그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삶과 사람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산다.
최규석은 그 시간과 삶을, 특출날 것도 없었기에 그냥 묻혀질 그 이야기들을
부모님과 누나들의 삶을 통해서 자전적 이야기로 꺼내어 살려내고 싶었을 것이다.
힘겨운 어린 시절, 지금 보면 어찌 살았나 싶을 정도의 삶을 지나
지금 현재는 수퍼에서 회사에서, 학원에서 요즘의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열심히 살아가는
작가의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짠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짠함은 안타깝고 동정의 짠함이 아니라,
공감되고 더불어 느끼는, 어찌보면 나 자산과 내 가족들에게도 던져줄 수 있는 짠함이다.
우리와 우리네 부모님의 삶의 역사.
그들의 삶이 지금의 삶을 만든 역사임에 원주민이라 칭함에 깊이 공감가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