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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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쯤.. 어느 인터넷 서점의 시상식에서 보게 된 작가 조정래의 모습은 이채로웠다.

한국사를 어우르는 굵직한 작품을 계속하여 써낸 진중한 작가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밝고 달변의 즐거운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스스로 자신을 가둔 글감옥을 '황홀하다' 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리라.

 

끊임없이 창작열을 불태우는 그가 새로운 작품을 내놓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중편을 장편으로 개작한 작품을 내놓았다.

거의 40년이 지나서 다시 펜을 들어 개작을 할 만큼 작가 자신에게 중요한 작품이라 생각되었기에

기대감을 안고 다시 조정래의 작품을 만났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 분단을 거치며 굴곡진 삶을 살아가는 점례의 모습은 여러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단편 <꺼삐딴 리> 라든가, 영화 "명자 아끼꼬 쏘냐" 등.

동방의 숨겨진 조그만 나라에서 식민지로, 그리고 혼란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사상의 혼돈기,

그리고 동족 간의 참혹한 전쟁과 그 결과로서의 분단과 가난.

그리고 그 극복기 등..

그야말로 정신없고 아픈 20세기의 현대사를 겪어낸 한국 이라는 나라에서

오직 살아가기 위해 힘겨운 숨을 쉬어야 했던 소시민은

강자에게 기댈 수 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때로는 일본, 때로는 미국이나 소련, 때로는 조선인 스스로의 정체성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살아가야 했던 이가 많았다.

 

주인공 점례는 그 중에서도 배운 것 없고 스스로의 자립력이 약한 여성이었기에,

그리고 강한 남자를 끌을 만한 미모를 타고났기에,

의도치 않았으나 언제나 남자에게 자의든 타의든 기댈 수 밖에 없는 삶을 살았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다른 세 아이를 낳게 되는데

더군다나 그 아이들은 아버지의 국적도 다른 것이다.

 

그 복잡함과 아픔이 바로 우리 선조들의 삶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그 모든 아픔을 딛고 드디어 자립력을 가지고 아이들을 키워낸 점례의 삶에는 또 다른 난관이 있다.

아버지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갖고 있는 성정과 한이 다른 아이들.

그들의 삶을 지켜봐야 하는 그인데,

우리 나라의 어머니이고, 그들의 삶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자책에

마냥 그들을 바라보면서 지켜야만 할 것 같은 책임감 때문에 결코 편할 날이 없다.

 

왜 이 작폼의 제목이 '황토'일까.

누런 흙이야말로 수천 년 동안 우리네 조상들이 그 뿌리를 박고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그 뿌리를 단단히 딛고 고단한 삶을 이겨내고 후손의 번창을 이뤄냈던 그 곳.

결국 점례가 어찌 보면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를 담아

자신의 유언장을 겸한 자신의 삶의 기록을 남기는 마지막 부분에서

그 뿌리의 힘과 어머니의 힘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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