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국 영화는 영화가 아니었다.
지금은 한국 영화, 또는 국산 영화로 순화되었지만
'방화'로 불리며 해외에서 수입된 영화들과 명확히 구분되었고, 그 취급은 낮았다.
지금같이 멀티플렉스가 많아 스크린 수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해외 영화와 스크린을 걸고 경쟁하기가 더욱 치열할 때에 경쟁력이 낮아
스크린 쿼터로 단단하게 보호해 주어야 했다.
주말이나 명절에 한국 영화는 루즈한 시간에 할당되게 마련이었고
그 편성 또한 해외 영화에 끼워팔기 식으로 판매되어 TV로 간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가는 영화가 하나둘씩 생겨났다.
내가 고등학교를 마칠무렵 개봉한 '서편제'가 단관으로 100만 관중을 동원하고
어느새 자국 영화가 헐리우드 영화에 맞서 시장을 지키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흥행성과 함께 작품성을 겸비한 영화들이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각종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기에 이른다.
춘사 나운규가 민족성 깊은 우리 만의 영화를 만들었던 시대로부터 100년.
우리 영화를 새롭게 조명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되는 이 무렵,
드디어 나와야 할 책이 나왔다.
영화사적으로 몇몇 영화를 사(史)적으로 고찰한 이론 책은 있으되,
우리 영화를 순수하게 영화로 일별하고 총정리한 책으로,
데이터베이스로 현재까지 제작된 6천편이 넘는 한국 영화를 모두 리스트업한 후,
영화계의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1001편을 뽑아
사진 자료와 함께 해설은 실은 책이다.
사실 같은 출판사에서 2005년에 출간된 슈나이더 편집의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이란 책을 읽으며
부럽기도 하고 안타까웠던 것도 사실이다.
영화라는 예술이 만들어진지 100년이 지나는 동안
수많은 자료와 역사를 모아 하나의 굳건한 산업이자 인정받는 예술로 만들어진 것이 부러웠고,
그 자료에 많은 아시아 영화가 포함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는 것.
그 와중에 우리는 우리 영화를 인정한 지도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다.
사실 나 역시 그렇게 영화를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를 챙겨보는 것은 일반적인 영화 관객들의 추세와 다르지 않았고
어찌 보면 조금 더 느렸다.
그래서인지,
그를 벌충하여 조금 더 큰 애정을 가지고 이 두꺼운 책을 찬찬히 읽었다.
1919년의 "의리적 구토"로부터 "추격자"까지.
1001편의 거대한 파노라마를 따라가다 보니
1001편의 해외 영화에서보다 본 영화의 수의 비율이 작다.
그리고 대부분 90년대 이후의 영화들.
아직 내가 한국 영화에 대해서 공부가 너무 적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한편으로 희망적이고 즐겁기도 하다.
아직도 내가 보고 나서 즐겁고 슬프고 감동받을 한국 영화가 많이 남았다는 것에.
이 책을 발판삼아 조금 더 한국 영화들을 찾아보며
지금의 한국 영화들과 한국 문화를 이루어낸 그 기저를 읽어 보리라.
이러한 방대한 작업을 진행한 저자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