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시 에디션 D(desire) 2
제임스 발라드 지음, 김미정 옮김 / 그책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전 영화로 보았었던 <크래시>.

많은 삭제 탓인지, 원래 난해한 내용인지..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는 이해하기 힘들었었다.

그 영화의 원작이 제임스 발라드 작품인지 조차도 몰랐는데 이 책이 나오고서야 알게 되었다.

역시 영화로 유명한 <태양의 제국>의 작가이자,

SF계의 흐름을 바꿨던 뉴웨이브의 대표 작가로 <크리스탈 월드>가 국내에 소개되어 있는 작가.

기대를 품고 책으로 세번째 그를 만났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애꾸 나라에서는 두 눈 가진 사람이 비정상이듯이 정상/비정상은 다수/소수의 상대적 상황에 의해 비롯된다.

따라서 (이 책도 마찬가지지만) 20세기 이후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다양한 abnormal한 상황들에 대해서

'변태'로 치부해 버리고 넘어갈 수는 없으며,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

시체 애호라든가, 아동 애호, 사지 절단 등등은

나로서는 결코 이해내지 공감할 수는 없으되, 삶의 다양한 측면을 들여다 본다는 면에서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던 기호와 달리,

이 책에 등장하는 자동차와 연결된 성 집착은 현대의 테크놀로지와 결합되어야만 하는 20세기 이후의 기호이다.

자동차와 그와 필연적으로 연결된 사고, 그리고 그 사고로 인하여 생겨난 피, 상처, 죽음 등등을

성애와 연결하여 집착하는 이들의 면면을,

과연 이러한 면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 또 리얼하게 묘사한다.

 

작가 스스로의 이름으로 등장한 주인공이 자동차 사고.

그 이후로 그의 삶에 등장한 본이라는 사람과 엮이면서

자동차와 사고에 삶을 엮어 성애를 벌이는 일에 점점 빠져든다.

그전부터 외도를 통한 자극으로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는 사이였던 아내와 함께

본과의 위험한 관계로 빠져드는 발라드의 모습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가학과 피학이 뒤섞인 성애로 점철되어 있다.

 

이러한 모습은 현대에 들어 점점 보이고 있는 새로운 현상인

사이버 펑크 류의 문화들 - 사이버 섹스 같은 - 의 시초를 예견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점점 전통적인 생활 양식이 사라져 가고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결합한 생활 양식이 나타나면서

인간의 삶에서 추구하는 가치와 기호는 더욱 다양해지기 마련인데,

일상과 가장 밀접하게 결합한 테크놀로지인 자동차를 주목한 작가의 시각은 혜안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에로티시즘은 가장 내밀하면서도 보편적인 감성이다.

당연히 문학에서도 이를 다루는 작품이 많지만

그 내밀성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에

때로는 전면에, 때로는 후면에 배치된다.

그책에서 시도하고 있는 에디션 D는 보수적인 우리 문화에서 거의 처음으로 시도되는,

에로티시즘 문학의 전면화 기획이다.

초기 기획은 아직 영화 등의 타 매체로 인하여 조금은 알려진 작품부터 시작하고 있지만

이러한 시도로부터 시작하여 하나의 장르로서의 에로티시즘 문학이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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