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디디에 드쿠앵 지음, 양진성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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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렸을 적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도시 생활과 시골 생활의 차이점 중 하나로 배운 것은,

도시는 아파트 생활이 많아 지면서 앞집 옆집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른다, 였다.

새로운 사회 현상의 하나로 교과서에서 배워야 했었던 그러한 생활 형태는 이제

우리 사회 생활 전반의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어 버렸기에

아마도 더이상은 교과서에 나오고 있지 않을 런지도 모르겠다.

 

우리 나라 보다 산업화를 훨씬 일찍 겪은 미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도시 생활의 단면이 더욱 일찍, 그리고 강하게 드러났었고

그러한 것이 결국 사회 문제화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만천하에 알리게 된 사건이 바로

이 책의 소재로 쓰인 '제노비스 살인사건' 이다.

뉴욕의 한 주택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 그토록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은

무려 38명에 달하는 목격자들이 있었고 그들이 행동을 취했으면 피해자가 살아났을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었기 때문에

잔혹한 살인마에게 젊은 아가씨가 수차례 칼에 찔리고 강간 당하며 잔혹하게 살해당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후 이 사건에 대해서 많은 사회학적, 심리학적 연구가 행해졌고,

서로에게 무관심한 도시인들의 생활을 보완하기 위하여 국가와 사회가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사회적 장치들이 생겨나는 기폭제가 되었다. (911 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사회학을 전공한 나 역시도

이 현상에 대한 해석과 여러 가지 이론은 배웠으되,

근본적인 해결책이나 방안을 접하지는 못했고

결국 요즈음에는 우리 나라에서도 심심치 않게 이 비슷한 이야기들이 들려오곤 한다.

죽은 지 며칠이 지나서야 사체가 발견된다거나 하는..

 

내 자신을 되돌아본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만일 밤에 제노비스 사건과 같은 처지에 처한다면 과연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하고 신고할 것인가.

Maybe Not.

나 또한 전형적인 도시의 무명인으로서 익명으로 남고 싶어할 것이다.

준법 정신이 과도할 정도로 투철한 독일 사회가 아니고서는 만연한 생활 행태.

 

결국 나 역시 키티 제노비스를 '잠재적으로' 죽인 사람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끔찍하다.

그렇지만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주변 사회에 개입하면서 살아가기는 또한 두렵도록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는 것도 사실.

과연 수십년전 미국 사회가 그러했듯이 지금 한국 사회는 그 목격자들을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풀리지 않는 질문을 제목으로 던져 놓은 이 책의 울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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