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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람이 있다 - 대한민국 개발 잔혹사, 철거민의 삶
강곤 외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대한민국 개발 잔혹사, 철거민의 삶>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한번의 긴 심호흡이 필요했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과 신문을 만들기 위해 지금과 같이 벚꽃이 피어갈 봄 무렵에 봉천동 철거촌을 찾아 취재했던 기억.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가는 관문에서 이 사회의 참혹한 현실에 처음 맞닥뜨린 어린 시절의 충격.
그리고 "상계동 올림픽"이니 하는 민중 운동격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끓어올랐던 분노.
이런 기억들은 뭔가 준비를 하고 끌어올리지 않으면 나를 긁고 아프게 하기 때문에
뭔가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겪어내야 할 또 다른 아픔에 대한 준비가 필요했다..
거의 이십 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개발' 이라는 이름 아래 똑같은 현실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뉴스로, 용산의 불탄 건물의 참혹한 현장을 보면서 너무도 안타까웠으나
이미 나이가 들어서 타성에 젖고 타협해 버린 것인지 어떤 행동을 하기에는 게을렀던 나.
언젠가 우연히 그 용산 현장을 지나가게 되면서 속으로 부끄러울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주택 보급율은 100%가 넘었으되 아직도 국민의 절반은 집이 없는 세입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의식주의 하나로 가장 기본적인 생존 조건의 하나인 주거 공간을 마련하기 위하여
사회 생활을 시작한 뒤 수십 년 동안을 고생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할 수 있어야 하는 개발이어야 하나
실상은 몇몇 가진 자들의 부와 건설사, 개발사 등의 배를 불리는 개발이 되고 있다.
철거 투쟁에 대하여 TV나 신문 등의 언론 보도를 접하는 사람들은 그저 남의 이야기로 치부하며
때로는 '얼마나 보상을 더 받으려고 저러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 책에서 인터뷰를 하는 철거민들 또한 실제로 철거민이 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고 하니.
그렇지만 저 가진 자가 아닌 사람은 누구나 철거민이 될 수 있다.
상위 몇 프로로서 주거 지역이 확 밀려 버릴 위기가 없는 곳에 살거나 아니면 언제든지 이사갈 수 있거나 하는 사람을 빼면
언제 자신의 생존권이 위협당하는 일에 맞닿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때에 가서는 이 책의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기본권 - 이주 대책, 삶의 터전에 대한 확보 내지는 확실한 대책 - 을 위해 싸워야 할 것이다.
개발이란 누구나가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수만을 위한 개발이란, 개발이 아닌 숨겨진 착취에 가깝다.
이러한 룰을 깨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종종 일어나는 철거 투쟁 등에 쏟아지는 비용은 실 대책 비용을 넘어설 수 있다.
경찰력 동원, 철거 용역 동원 등등을 생각해 보면 보다 진지한 대책을 초기부터 세운다면 여러 사람에게 윈윈할 수 있을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으로 현실이 돌아가는 것은 강한 자에게 유리한 저 룰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사회적 합의, 연대가 필요하다.
그 누가 뭐라 해도 처참하게 돌아간 서민들의 목숨값 만한 것은 없으며,
그들과 목숨과 바꿔서 점차 살아갈 만한 사회가 만들어지는 모습이 나와야 한다.
20년전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현실..
앞으로의 20년은 이래서는 안된다.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