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손
닉 토시즈 지음, 홍성영 옮김 / 그책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참 유난히 읽기 힘들었던 소설이었다.

평소에 왠만한 책은 며칠이면 읽지만 이 책은 쉬엄쉬엄 읽어가며 두 달이 걸렸다.

아주 재미없거나 어려운 책은 아니었는데 그저 쉽게 책장이 넘어가질 않았다.

그리고 이는 나의 오래된 기억을 건드렸다.

 

88올림픽이 열리던 해, 중학교 1학년 때

잦은 이사 때문에 집에 책이 별로 없었던 터라 친구 집에 가면 책부터 빌리던 나는

빵빵한 양장본 세계문학전집을 어느 친구의 집에서 발견했었다.

그리고, 무슨 책인지도 모른 채 그 중에서 <신곡>이라는 멋진 제목을 가진 책을 빌렸다.

그리고, 몇달이었을까.

<지옥>, <연옥>, <천국>편과 해설집 총 네권을 펼쳐놓고 씨름한 끝에 겨우 다 읽었다.

아니 읽었다는 표현보다는 그저 눈으로 글씨를 좇았다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서양 문학의 역사 중 가장 위대한 책 중의 하나로 칭송받을 만큼

방대하게 그때까지의 서양 사상을 상당히 축약하여 시로 표현한 작품인 만큼

불과 중학교 1학년에 불과했던 내가 누군가의 가르침 없이 해설집 한권 만을 가지고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으니.

그렇지만 불과 몇 페이지 혹은 몇십 페이지 씨름한 끝에 던져 버렸을 많은 아이들과 달리

무슨 오기였는지 나는 어처구니 없이 많은 시간을 큰 성과없이 써버리며 그 책을 끝까지 읽었고

그 뒤 20년이 넘게 흐른 지금까지 대부분 교양, 상식 책에서 제목만 들어봤을 이 책을

이미 읽었노라고 속으로 자부하며 지냈다.

일종의 허영이 분명하다.

 

그 뒤로 단테라는 존재는 멀고도 가까운 친구같은 이름이었는데

그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간 이 책은 또 다시 <신곡>의 기억을 되살리는가.

 

이야기는 작가 본인으로 등장하는 닉이 단테의 신곡 원본을 둘러싸고 벌이는 하드 보일드적 모험과

700년전 단테가 신곡을 창작하던 과정을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뒷골목의 세계를 잘 표현한다는 작가 답게 초반부의 전개는 분명히 느와르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그쪽의 줄거리는 오히려 단순하다.

단테가 신곡을 창작하면서 느끼는 과정과 유태인 노인과 나누는 많은 이야기들, 그리고

그의 여인인 베아트리체 이야기와 아내와 아들의 이야기가 훨씬 흥미롭다.

성경과 카발라 등의 이야기 등은 단테가 신곡을 창작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였을지에 대한 작가의 상상인데

이것이 느와르적 현대 이야기와 어우러지는 것은 힘겹지만 재미있는 전개이다.

 

완전수라고 일컬어지는 3의 끝없는 향연.

갑자기 20년 만에 다시 신곡이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서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느낌이 조금은 달라질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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