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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1 -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김대중 옮김 / 새만화책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에 끝난 아시안 컵과 같은 축구 경기,
그리고 고대사를 볼 때의 페르시아 제국,
이란-이라크 전쟁.
이란이라는 나라를 말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이다.
호메이니 정도가 어렴풋이 생각날 뿐,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아랍 인종이 아닌 채 독자적인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섬과 같은 나라인
이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저 다른 중동 국가와 마찬가지의 이미지일 뿐.
그 이란에서 태어나 소녀 시절을 보내다가 프랑스에서 살았다는 저자 마르잔 사트라피.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이 책을 드디어 만나다.
그리고 누누이 들어왔던 이 책에 대한 평판이 헛된 것이 아님을 확인했다.
뛰어난 고대 문명으로 패권을 장악했던, 찬란했던 페르시아 제국의 역사는 현대에서는 간 곳이 없고
이란은 중동 지역에서 약소국의 지위에 머무르고 있었다.
하지만 안정적인 석유의 공급을 꾀한 미국의 지원을 받은 레자 샤가 왕위에 오르고
무능한 그와 그의 아들은 국가의 부를 탕진해갔다.
그리고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을 통하여 근본주의자 세력이 정권을 잡게 되는데
이는 이란 국민들에게 또 다른 시련의 시작일 뿐이었다.
샤의 전제적 통치와는 또 다른,
이슬람 근본주의에 의거한,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인권에 대한 탄압적 수준의 통제는
많은 이란 국민에게 자유의 억압을 가져왔었던 것이다.
사트라피의 부모와 친척들은 이러한 굴곡진 이란 현대사에서,
부를 가지고 있음에도 또렷한 사회 의식을 소유하며 국민의 자유와 국가의 민주화를 위해서
어떤 행동이 필요한 지를 깨치고 있었던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이슬람 국가에서 여자로 태어난 사트라피는 어찌 보면 많은 제약을 받을 수 있었던 상황에서
이들에게 자주적인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그리하여
종교를 대하며 신과 진지하게 대화도 나눠보고,
때로는 펑크에 빠져 틴에이지 다운 면모를 보이기도 하고,
사회의적 사상을 받아 들여 사회 계급과 빈부 격차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며,
때로는 이 모든 것들을 과시적으로 받아들이는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하기도 하는
스스로 자기 주체적인 생각을 많이 하며, 사트라피는 자랐다.
그러나 조금 더 자랐을 때 갑자기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린 근본주의 정책과
곧이어 발생한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큰 사건과 모습이 펼쳐진다.
많은 죽음과 부조리를 사춘기에 경험한 그녀는
자기 주체성과 정체성에 큰 혼란을 가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부모는 결국 그녀를 외국으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이란인이 아닌 한, 여성이 아닌 한, 투사의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은 한,
그녀의 경험은 일반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그녀가 그려낸 감성들은
묘하게 보편성을 띄고 있다.
죽음과 분노와 열의와 같은 보편적 감정들을 극한 상황에서 표출해 내며 성장해 가는 사트라피의 모습은,
그러한 감정과 각성을 얻게 되는 계기는 다를 지라도
점차 성인이 되어 가는 청소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그 상황이 너무나 거대했기에 그녀는 또래보다 빨리 그리고 깊게 자의식을 가지게 되었던 것.
무척 감동적이다.
역사의 흐름에서 뚜렷하게 자의식을 획득하여 가는 성장통의 모습은
비슷한 성장통을 겪었던 우리 나라의 어머니 아버지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면서
한국 사람에게도 던져주는 의미가 커 보인다.
차근차근 되씹어 보아야 할 책으로 서가에 소중히 꽂아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