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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3 - 상 - 바람치는 궁전의 여왕 ㅣ 밀레니엄 (아르테) 3
스티그 라르손 지음, 박현용 옮김 / 아르테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랫동안 미뤄왔던 밀레니엄 3부작의 마지막 권을 드디어 읽었다.
2부를 읽은지 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3부를 잡게 된 것은 이유가 있다.
스웨덴을 방문할 기회가 생기면서 내가 애정을 갖고 있는 이 책을
쓰여진 본고장에서 읽어보겠다는 다소 호기어린 객기가 첫번째 이고,
불어판으로 번역하면서도 스웨덴에 대한 최소한의 조사 및 공부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번역으로 읽은 1, 2부가 안타까워서 조금이라도 그곳을 느껴본 뒤에 읽고 싶다는 생각이 두번째다.
'아이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큰 맘 먹고 강북의 집을 팔고 대치동 전세로 이사했다' 라는
문장을 한국어로 쓰여진 소설에서 접한다면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의미를 우리 나라 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읽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단순히 이사했다는 내용 전달 이외의 것을 읽을 수 없다.
짧은 방문으로 행간을 읽을 만한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글의 배경이 되는 거리의 모습이라도 떠올릴 수 있고,
그 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이라도 올라간다면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이 작품을 약간이나마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초미의 베스트셀러가 된 책 답게
스톡홀름 시 홈페이지의 관광 안내에는 '밀레니엄 투어' 라고 해서
이 책의 배경이 되는 거리들을 다니는 여행 코스를 소개하고 있다.
살란데르가 살았던 아파트가 있는 거리라든가, 밀레니엄 사의 사무실이 있는 곳 등등..
미처 그 곳들을 다 돌아볼 겨를은 없었으나
하도 싸돌아 다닌 끝에 그 근방은 다 다녀왔다는 것에 조금은 즐거웠었던.
그리고 행간의 의미는 잘 모르더라도
왜 안가가 쿵스홀멘이라는 곳에 위치하는지,
왜 NC 백화점에서는 미행이 불가능한지,
왜 형사들의 이른 아침 행색과 음식은 그러한지,
3부에 등장하는 복잡다난한 스웨덴의 현대 정치사와 사포의 관계 등등은 어떤 의미인지..
약간은 파악하면서, 과연 이 책을 읽는 재미는 증대되었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미카엘이 다니던 그 거리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미처 다 읽지 못한 부분은 한국에 돌아와서 다 읽었다.
파란만장한 삶과 그 못지 않게 이슈를 일으킨 죽음까지.
뭔가 해보고 싶었던 것을 품고 살았던 저자 스티그 라르손이
밀레니엄 시리즈로 써보고 싶었던 것은 스릴러 소설을 통한 스웨덴 사회의 해부였을 것이다.
거대한 부패 기업을 다룬 1부와
사회적 기저로 인한 인권 침해를 다룬 2부를 거쳐
3부는 국가 권력 뒤에 숨은 음모와 비행을 고발한다.
독일어판 번역자로 바뀐 이번 3부에서는 20세기 후반 스웨덴 정치사에 대한
배경 지식이 어느 정도 필요한데 나름 각주로 여러 가지를 설명해 주고 있어 도움이 되었다.
총선일이면 투표일이 80%가 넘고
국민 각자가 10개가 넘는 정당 가운데 자신의 지지 정당이 확실할 만큼
정치가 일상에 상당히 중요한 롤을 차지하는 곳이 스웨덴이다.
그 이면에 숨겨진 국가 권력의 빅 브라더 롤은
사실 복지 국가와 열린 사고라는 큰 간판 뒤에 숨은 스웨덴의 또 다른 얼굴이고
라르손은 그것을 드러내고 싶었나 보다.
단순한 범죄자 급이 아닌,
프로 첩보원들과 대결하는 말 그대로 '슈퍼' 급인 미카엘의 활약과
그와 파트너쉽을 이루어 수사하는 동료들,
그리고 언제나 매력적인 리스베트 살란데르의 모습은
10부작으로 기획되었다가 3부에서 끝나버린 이 시리즈의 종결이 너무나도 아쉽게 만든다.
다시 친구가 되는 살란데르와 미카엘이 뭔가 보여줄 것들이 많이 남아 있을 텐데..
미카엘을 페르소나로 한 저자 스티그 라르손은
평생을 좌파로 살아오며 진보 저널리스트로 살아왔다.
스웨덴에서조차 좌파로 사는 것은 쉽지 않고
실제로 몇년 전 사포가 몰래 좌파 인물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관리하고 있었음이
밝혀져 스웨덴 전체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고 한다.
신념을 가지는 것은 어렵고,
그 신념대로 살아가는 것도 어렵다.
그 고난함을 이겨내고 그 신념을 관철하여 통쾌하게 승리하는 이 소설이 난 너무나 좋다.
라르손 아저씨의 명복을 빌고,
그의 여자 친구가 꼭 재판에서 이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