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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우연한 기회에 까미노 데 산띠아고에 대한 책을 한권 접한 뒤에 스페인 북부의 이 길은
내가 가장 가고 싶고 걸어 보고 싶은 꿈의 길이 되었다.
지금도 뭔가 생각할 거리가 있고 내 자신을 좀 열고 싶을 때는 정처없이 몇 시간이고 걷기를 좋아하는데,
800킬로미터를 정처없이, 또한 무언가를 만나며 걷는다면
심신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지금의 나를 어떻게든 끌려 올려줄 수 있지 않을까.
그 길의 끝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내 자신이든, 신이든, 혹은 어떤 인연이든 간에
딱 하나만 그 길에서 얻어오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도 강하다.
일상에서 얻기 힘든 어떤 것을 그 일상을 벗어나서 얻겠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잘 알고 있음에도 왠지 까미노에서는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강한 희망.
당장 떠나기에는 여건이 허락하지 않기에 일생의 숙제로 남겨두면서도
그 곳을 조금씩이나마 들여다 보고 싶다는 생각에
먼저 다녀온 이들의 책들을 한권 두권 모아가며 읽고 있다.
그 책들의 저자에는 기자도 있었고, 가수도 있었고, 전문 도보 여행가도 있었고, 평범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담고 간 사연도 각기 다르고, 그들이 얻어온 것들도 많이 달랐었던 이야기들.
이 책은 우리 나라의 대표적 문인의 또 다른 사연이다.
삶의 원숙기에 접어들고 문단에서 상당한 위치에 서 있으며,
그가 살아온 삶 또한 범상치 않고 그의 남편으로 인하여 또 다른 삶을 짊어진 한 여류 소설가.
그녀가 어느날 문득 무언가를 떨치고 나와야 겠다는 계기를 얻고
유언장까지 써 놓은 채로 훌쩍 떠났다.
많은 것을 내려놓고 그 안의 신을 만나기 위함.
무엇이, 누가 그를 그토록 비장하게 만들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무언가를 애타게 바랬음은 알 수 있다.
문인이기에 그가 들려주는 까미노 여정은 뭔가 사색적이고
그토록 절실했던 만큼 절절한 깨달음을 풀어줄 것을 이 책을 열며 기대했다.
하지만 결국 그도 인간이었기 때문일까.
400페이지의 두툼한 책은 모두 동행과의 자잘한 다툼과 대화와 생각들.
그리고 그 만이 알 수 있는 그와 신과의 만남의 영성으로만 차 있을 뿐.
나와 같은 독자로 하여금 뭔가 혜안을 갖게 할 만한 새로운 깨달음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가진 다양한 삶과 사연은 그 다양성 만큼이나
종국에는 보편적 이치와 생각으로 치닫는 것인가.
그의 동행을 모르고, 아직 신앙과 영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 나에게
그의 글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거리감이 느껴질 뿐..
어쩌면 문인이라고 선입관을 가지고 그의 글을 대한 내가 잘못인지 모르겠다.
그저 그도 한 인간일 뿐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