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새니얼 호손 단편선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
나사니엘 호손 지음, 천승걸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평점 :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 호손의 작품을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읽은 것은
역시 <주홍 글씨> 이다.
중학교 1학년 때쯤인가,
유난히 이사를 많이 다녔던 우리 집에는 있을 수가 없는 세계 문학 전집이 친구 집에 있는 것을 보고
두꺼운 양장 장식용이었던 그 책들을 한권 두권 빌려서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고 읽었던 고전 섭렵의 시작.
그 와중에 호손의 <주홍 글씨>가 끼어 있었던 것이다.
체계적인 독서 지도를 받지 못한 채 무모하게 도전했던 그 맘때 나이의 고전 읽기 도전이 의례 그러하듯,
나 역시 그저 줄거리를 좇아갈 뿐, 그 내용 안에 담긴 많은 이야기들을 받아올 내공이 되지 못하였으나
어린 마음에도 가슴에 주홍 글씨를 새기고 살아가야 하는 한 여인의 삶이란 것에 대해
'왜?' 라는 의문이 크게 들었던 것은 기억이 난다.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속에서 나타나는 규범이
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에 꼭 필요한 것이라 하더라도 과연 그것이 개인에게 얼마나 개입할 수 있는지..
그런 의문은 사회학을 전공하게 되는 수년 뒤에도,
그리고 지금도 역시 유효하게 내게 남아 있다.
언제나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호손의 작품을 제대로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을 드디어 실천에 옮겼다.
일단 작가의 여러 면목을 두루 살필 수 있고, 시간적 흐름에 따라 변하는 모습까지 살필 수 있는 단편집.
<주홍 글씨>에서도 그랬지만, 초기 개척기 시대 미국의 생활상와 사회관이 잘 드러나는 배경을 지녔다.
애초에 종교적인 자유를 찾아 식민지로 넘어왔던 이들이 대다수인 만큼,
엄격한 청교도 윤리가 작은 마을 단위로 모여사는 개척민들의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와중에 특이한 것은, 아마도 낯선 땅에서 힘겹게 자연과 싸우면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 때문인지
자연과 모호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경외가 근저에 깔려 있는 듯한 느낌.
그것을 단지 종교로만 눌러 극복하기에는 약간 힘에 부치는 것도 사실이었던 듯 싶다.
유럽에서 겪어 보기 힘든 광활한 자연과 토착 원주민들.
힘겨운 나날과 엄격한 생활 속에서 그들의 생각 속에는 여러 가지 가치관이 혼재했고,
호손은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그의 이야기 속에 담아 그러한 모습을 살짝 보여주려 한 듯 싶다.
영국 문학을 극복하고 미국 문학의 시작과 태동을 알리는 시대의 리더로서,
호손의 문학은 이러한 초기 개척기 시대 문학의 한 단면을 대표하는데,
역사가 길 수 없는 미국의 역사에서 그들만의 하나의 민담을 불과 몇백년 전에 창조해 나간 것.
미국 전래 이야기에서 토착민의 것들을 제외한다면 호손이나 몇몇 작가의 이러한 이야기들이
그들의 이야기의 원천이 되지 싶다.